이 글은 남우근, ‘노동약자, 일하는 사람 그리고 노동자 - 노동법이 나아갈 방향’,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노동법률원 출범 포럼 발제문(2024. 9. 26.)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제조업의 축소와 서비스업의 확대 등으로 고용형태가 다양화하면서 노동법의 보호 효과에 대한 문제제기가 꽤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최근에는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 노동통계에서 비임금 노동자로 분류되는 사각지대 노동자 규모가 커지면서 노동법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들을 “노동약자”로 호명하며 지원법률을 만들겠다고 얘기한다. 일각에서는 노동법 보호 영역을 노동자성과 무관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이를 받아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의 흐름이 노동법 보호 영역을 확대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는 것인지, 보호의 실효성은 있는지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고용의 초유연화 시대, 비임금 노동자는 누구인가
노동시장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비임금 노동자가 누구이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비임금 노동자는 임금노동자가 아닌 경우를 지칭하지만, 맥락적으로는 노동법상 임금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근로기준법은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에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 3.3%를 납부하고 있다. 노무수령자로부터 독립적으로 일을 하는 독립사업자도 있지만,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하고 있거나 일반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위장된 사업자’도 상당수다. 이러한 설명은 그동안 특수고용직이라고 부르는 노동자에 대한 설명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기사, 보험모집인 등 2000년대 초반부터 사회적으로 쟁점화된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법적인 표현으로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에서 현재는 ‘노무제공자’로 지칭되고 있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령(노무제공자 18개 직종), 고용보험법 시행령(노무제공자 17개 직종),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특수형태 근로종사자 14개 직종)에서 개별 직종이 특정돼 있다.
노동시장 변화의 맥락에서는 특수고용직과 비임금 노동자는 동일선상에 있기도 하지만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노동자성 오분류 문제, 고용지위 분류 기준의 문제에 있어서는 동일한 선상에 있지다. 하지만 근래의 비임금 노동자 문제는 기존의 특수고용직과는 달리 플랫폼·프리랜서가 증가하고 있고, 여기에 추가로 ‘마구잡이식 3.3% 적용’의 문제도 포함돼 있다.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가짜 3.3 노동자, 위장사업자, 비임금 노동자 등의 개념은 법률적 개념 구분, 통계상 고용 분류, 노동시장 관행상 분류가 조금씩 달라서 때로는 중첩되기도 하고 구분되기도 한다. 법률·통계·관행 중 어떤 것을 중심으로 분류하냐에 따라서 중첩과 구분의 경계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규모 추산도 달라진다 .가장 넓게 보면 ‘인적 용역 사업소득세’ 납부자의 상당수가 비임금 노동자로 분류될 수 있는데, 2022년 국세청 기준으로 847만명이다.
비임금 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한 세 가지 접근
비임금 노동자 규모의 빠른 증가, 권리 공백 상황의 심각성에 동조해서 다양한 입법적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입법적 시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비임금 노동자 노동권 보장에 있어서의 의미는 크게 차이가 난다.
첫째, 현 정부의 ‘노동약자지원법’ 추진이다. 아직 법안이 발의되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특수고용직·프리랜서 등을 사업대상으로 노동약자지원재단 설립, 공제회 설립 근거 마련, 분쟁조정위원회 설치, 표준계약서 적용, 경력인증제 운영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약자지원법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노동법의 시대적 조응 과제와 전혀 무관한 접근일 뿐만 아니라 현실을 더욱 왜곡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노동약자’라는 어이없는 표현도 그렇거니와 노동자성을 배제하는 것을 전제로 접근하는 방식은 노동권 사각지대를 더 세분화한다. 비임금 노동자를 제3지대로 몰아서 논의 폭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공산이 크다. 지원 내용에 있어서도 노동법적 사용자 책임은 없고, 정부 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기실 공제회 설립, 표준계약서 적용, 경력인증 등은 지자체에서 이미 진행하고 있거나 시도하고 있는 사업들이다. 서울시는 내년 예산에 프리랜서 경력관리시스템 구축 사업으로 15억7천만원을 책정해 두기도 했다. 입법권과 노동행정 권한을 가진 정부와 여당이 권한 없는 지자체의 꽁무니를 쫓아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말로는 근로기준법을 보완하는 법안이라고 하지만 근로기준법 적용 방안에 대한 모색도 없이 결과적으로 근로기준법 적용배제를 확인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일하는 사람 보호법안’이다. 현재 3건의 법안(김주영·이용우·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 발의돼 있다. 노동약자지원법과 동일하게 임금노동자와 별도의 법 적용 범주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노동자성 문제를 우회하고자 하는 정부나 자본의 흐름에 활용될 소지가 크다. 보호방식은 차이가 있는데 노동약자지원법과 달리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근로기준법(균등처우, 부당해고 제한, 휴무 보장, 모성보호, 괴롭힘 금지 등), 산업안전보건법(산재예방조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성희롱 금지 등)의 일부를 준용하면서 사용자에게 부분적인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일하는 사람 보호법안’은 기존 노동법의 보완재적 접근을 하고 있지만, 논의 맥락에서 노동자성 확대에 대한 선행논의를 촉구할 때만 그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근로자 개념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현재 2건의 법안(이용우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안)이 발의돼 있다. 이들 개정안은 기본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법을 준용해서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추정하고 있고,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하고 있다. 근로자성을 부정하기 위해서 사용자는 △노무제공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아니하는 경우 △노무제공이 사용자의 통상적인 사업 범위 밖에서 이루어진 경우 △노무제공자가 동종 분야에서 본인의 이름으로 독립해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 등 세 조건을 모두 증명해야 한다. 근로자 개념을 고용형태가 다변화하는 현 시대에 맞게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이러한 접근은 국제적인 흐름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 의회가 지난 4월에 통과시킨 ‘플랫폼 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에 관한 지침’의 첫 번째 내용은 회원국들이 향후 2년 내에 고용지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국내법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에서는 고용지위 판단 기준과 관련된 다양한 수준의 논의가 전개될 것이다. 지난 2월 호주 의회를 통과한 ‘구멍 막기 법안’(Closing the Loopholes bill)도 플랫폼 노동자의 운임, 계정 정지 등 노동조건 결정에 최저기준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듯이 스페인은 2021년에 라이더법을 통해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세계적인 흐름은 자영업자로 오분류돼 있는 독립계약자인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해 노동자성을 확대적용하는 과정에 있다. 고용지위상 오분류 문제는 정부가 얘기하는 ‘노동약자’의 핵심 쟁점이다. 노동자성을 확대적용하고 있는 세계적 흐름에 한국 노동법도 호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