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유난히도 더웠던, 기후위기를 실감케 했던 올여름이 끝날 무렵, 국회에서는 폭염과 한파에 관련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업주가 예방해야 할 건강장해를 명시하는 산업안전보건법 39조 보건조치에서 기존에 포함됐던 ‘고온·저온’에 의한 건강장해를 ‘고열·한랭’에 의한 건강장해로 변경하고 ‘폭염·한파에 장시간 작업함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장해’를 신설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관련 개정안을 발의하고 국회 본회의 재석 인원이 전원 찬성해 통과된 법안이다. 수많은 노동자가 폭염과 혹한기 건설현장, 물류현장 등에서 고통받으며 실효성 있는 법제화를 요구한 결과다. 이상기상 현상 증가로 온열질환 위험 또한 늘어 강제성 없는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을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비록 폭염·한파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조항은 신설하지 못해 여전히 한계를 지니고 있으나, 사업주의 의무를 명확히 법제화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제 내년 6월1일 법률 시행을 앞두고 구체적인 사업주 의무 사항을 정하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을 개정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안전보건규칙은 노동부령이므로 국회를 거쳐야 하는 법률에 비하면 개정은 훨씬 단순하다. 법령안 입안 후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치고 사전영향평가, 입법예고, 규제심사와 법제처 심사를 마치면 공포할 수 있다. 첫 단계인 법령안 입안시 일반적으로 전문연구기관에 의한 조사ㆍ연구, 정책추진팀 또는 협의체의 구성 등을 통해 심도 있는 정책 내용 논의를 하게 되고, 검토·정리한 결과를 객관적인 언어로 구체화·규범화해 법령안을 만든다. 필자도 직업환경의학 전문가라는 이유로 ‘폭염 규칙 개정을 위한 포럼’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중요한 법령안을 만드는 초기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에 무척 기쁜 마음으로 회의에 참여했다. 새로운 변화를 국민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노동부 관계자들을 보며 기대감을 키웠다. 두 차례의 회의는 연구결과를 듣고 토론하는 것으로 채워졌는데 아쉽게도 규칙 개정방향이나 쟁점에 대한 논의가 깊이 있게 이뤄지진 못했다. 물론 연구결과를 검토하면서 관련된 전반적인 지식을 정리할 수 있었으나 바쁜 사람들 여럿이 모였는데 정작 중요한 얘기는 미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심지어 규칙 개정안 초안 작성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 이외에는 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부 내 다른 관련부서조차 개정안 초안의 내용이 공유 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토로했다. 다음 회의에서는 구체적인 개정안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하고 기다리던 중 마지막 회의 공지 연락을 받았는데 곧이어 “장소가 협소해” 확정된 인원들로만 회의를 하겠다며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회의 대상자 규모보다 작은 장소를 정한 것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고 그래서 회의 참석자를 제한하겠다고 하니 이 규칙 개정을 위한 포럼을 과연 진지하게 운영한 것이었나 의구심이 든다. 물론 이 포럼은 어떤 공식적인 지위가 있는 위원회도 아니고, 주무관청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겠지만 이왕 정책 내용을 심도 깊게 논의하기 위해 구성했다면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바람직한 개정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법령에도 이미 ‘고온·저온’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할 의무가 사업주에게 있었고, 안전보건규칙에 폭염에 노출되는 경우 적절하게 휴식하도록 하라는 조항이 도입된 지 2년도 넘었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지금껏 법적 근거가 미비해 행정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고 결국 폭염과 한파가 굳이 법에 들어가게 됐다. 이제 마음껏 행정력을 펼칠 법적 근거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부의 의지가 개정안에서 제대로 드러나길 기대하고,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조직들, 특히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노동계의 의견이 경청되고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는 과정 속에서 실효성 있는 규정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앞으로 남은 입법과정 동안 무늬만 거버넌스라고 생색내는 것을 경계하고 의사결정과정을 투명하게 개방해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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