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원 객원기자/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말레이시아는 경제성장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 중 하나다. 올해 기준 말레이시아 내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만 약 230만명으로, 전체 노동인구의 약 15%를 차지한다. 비공식적으로는 약 550만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제조업·건설업·농업·서비스업 등 모든 산업에서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지나친 외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노동시장 왜곡이 초래되고 있다.

임금 억제가 대표적인 문제로 꼽힌다. 외국인 노동자는 현지인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노동력 공급 과잉으로 내국인 노동자에게도 저임금 노동시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월 1천500링깃(RM)이지만, 많은 내·외국인 노동자가 이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지나친 외국인력 유입은 현지 노동자의 임금상승을 저해하고, 노동시장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외국인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고 고용안정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저숙련 노동자로 분류되며, 상당수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되고, 외국인 노동자와 현지인의 일자리 경쟁 또한 격화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노동시장의 또 다른 역설은 전문인력인 간호사의 해외 유출이다. 영어 사용이 원활한 말레이시아 간호사들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열악한 국내 노동환경이 그들을 해외로 떠나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임금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말레이시아 간호사의 평균 월급은 약 2천800링깃(RM)으로, 이는 싱가포르의 3분의 1, 호주의 4분의 1 수준이다. 높은 업무 강도와 긴 근무시간을 고려할 때, 말레이시아 간호사들은 더 나은 임금과 근무조건을 제공하는 해외로의 이주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열악한 근무환경도 문제다. 말레이시아 보건부는 2024년부터 간호사의 주당 근무시간을 42시간에서 45시간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는데, 간호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높은 업무 강도로 과로와 탈진을 겪는 간호사들에게 근무시간 증가는 더 큰 부담을 주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는 약 8천명의 간호사가 부족하며, 2030년에는 간호사 부족률이 약 6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말레이시아의 노동시장 사례는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 역시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전문인력 유출 문제와 저숙련 노동자 유입 문제를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의 관리와 국내 노동시장 보호의 균형이 필요하다. 말레이시아 사례는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의 무분별한 유입이 국내 노동시장에 임금 억제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시 직무별·숙련도별로 체계적인 쿼터제를 운영하고, 노동자들이 사회보험 혜택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내국인 전문인력 유출 방지를 위한 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다. 말레이시아 간호사들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해외로 떠나는 것처럼, 한국 역시 의료·IT 등 특정 산업에서 전문인력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문인력의 임금 경쟁력을 강화하고, 업무강도 완화 및 직업 안정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미래지향적 노동시장 정책 수립이 요구된다. 말레이시아는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높은데도, 저숙련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개선하지 못해 노동시장 왜곡이 심화하면서 ‘중진국의 덫’에 걸려 있다. 한국은 장기적으로 저숙련 노동자의 비중을 줄이고, 자동화와 디지털화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노동시장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말레이시아 사례는 외국인 노동자와 전문인력 간의 이중적 흐름이 가져오는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간호사 인력 유출이라는 상반된 현상은 단순한 경제적 논리가 아닌, 구조적 문제와 정책적 허점에서 기인한다. 말레이시아를 반면교사 삼아, 균형 잡힌 노동시장 정책과 전문인력 보호를 통해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 노동자 개인의 삶의 질과 사회적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

 

윤효원 객원기자/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webmaster@labortoday.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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