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14일 늦은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 놓고 커피 내리고 계란 삶아 아침을 준비했다. YTN에는 이재명 재판 예고기사 다음엔 부인 김혜경씨 재판 예고기사가 나온다. 어제 나온 윤미향 의원 전 의원의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 기사가 그 뒤를 이었다.

하루 종일 뉴스만 하는 보도전문채널이라 해도 너무 지겹다. 이런 채널에서 종일 정치뉴스만 쏟아내니 전 국민이 정치전문가가 된다. 국민 삶과 아무런 관계없는 공해에 가까운 이런 정치기사 말고도 ‘보도할 게 얼마나 많은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경제뉴스로 넘어갔다.

환율이 고공행진한다는 뉴스다. 트럼프 당선이 원인이란다. 진짜 그뿐일까. 트럼프 당선 훨씬 전부터 환율은 고공행진했다. 트럼프 당선은 여러 이유 중 하나일 뿐인데, 어떻게 이리 무모하게 단정하나.

다음엔 수능 뉴스다. 반세기 넘게 한결같다. 자녀를 고사장에 보낸 부모의 하나 마나 한 인터뷰에 이어, 뭐가 그리 급하다고 1교시가 끝난지 1시간 만에 ‘지난해보다 쉽다’고 단정해 보도한다. 교육과정만 이수하면 능히 풀 문제를 냈다고 수십 년간 멘트 하나 안 바뀐 출제위원장 발언도 담았다. 10년 전 출제위원장 화면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겉만 핥는 기사를 반세기 넘게 반복하면서도 지겹지 않은가.

다음으로 경기도교육청에서 나이스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이날 들은 뉴스 중에 가장 기사 같았다. 하지만 피해 규모는 취재도 않고, ‘우회 접속 경로가 있어서 피해가 없다’는 교육청 발언만 앞세우고 끝이다. 이어진 사회 뉴스에선 구미 교재살인 사건 피의자의 신상공개 소식이다. 이미 전날 온라인에 나왔던 내용이라 뉴스라 하기도 어렵다. 새로운 것도 없다.

이렇게 세상을 겉핥기만 했던 취재 보도가 끝나자 곧바로 변호사 2명이 나와 또 정치를 놓고 대담한다. 물론 거대 양당 양쪽에 줄을 댄 정치지망생에 가까운 발언만 쏟아낸다. 논리보다는 억지를 앞세워 자신이 희망하는 정당만 대놓고 편드는 길고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종일 뉴스를 내보내야 하니 이런 평론가 불러 시간 보내는 게 가성비가 좋은 줄은 알지만 너무하다.

언론은 새로운 것만 보면 본능에 끌린다는데 그렇지도 않다. 거대 양당 편드는 얘기에 3당, 4당이 설 자리는 없다. 긴긴 시간을 채워야 하는 보도전문채널이라면 태극기부대나 당장 사회주의 변혁하자는 원외정당을 불러도 좋은데, 늘 제도권 안에 갇혔다. 방송이란 매체 특성 때문에 그런가.

넓은 지면에 여러 보도가 가능한 신문은 어떨까. 이틀 전 12일엔 중앙일보가 1면 머리에 “권고사직, 재취업 한파 4050 ‘신사오정’ 시대”라는 제목으로 ‘밀려나는 중장년 직장인들’을 심층취재했다. 1면에 이어 4면 머리에도 “롯데·포스코·이마트 희망퇴직 … KT는 직원 6분의 1 내보내”라는 연결기사를 길고 길게 썼다. 5면 머리에도 “IT개발자·은행원 경력자도, 패스트푸드 취업설명회 몰린다”는 별도 기사를 썼다.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는데 원인 분석도 없고, 대안도 없다. 그저 구조조정 사례만 잔뜩 나열하고 끝이다. 중앙일보는 중장년층 무더기 해고의 원인을 4면 기사에서 딱 2문장 언급했다. “기업이 ‘사오정’ 퇴직을 밀어붙이는 배경은 경기 침체에 따른 실적 부진이 첫손에 꼽힌다. 여기에 연공서열형 임금구조라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실적 부진’이 사오정 해고의 원인이란다. 하나 마나 한 소리다. 경기 침체의 원인은 찾아 보려고도 안 한다. 경기 침체가 원인이라 해도 사오정만 집중 해고하는 원인도 안 따진다.

그러면서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 탓이라며 해고의 원인을 슬쩍 노동자에게 떠넘긴다. 참 쉽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