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9일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시청쪽으로 향했다. 인근에 도착했을 때 시청에서 세종대로까지 경찰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 방석복을 장착하고 방패를 든 경찰들이 집회 장소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집회를 막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절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민중이 만들어 온 민주주의를 단절하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그들이 만들어 낸 ‘선’은 집회 참여자가 집회 장소로 들어가는 것도, 그저 길을 지나가고자 하는 시민의 발걸음도 모두 끊어냈다.
단절과 동시에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집회를 폭력적인 방식이 아닌 평화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왔다. 평화적인 집회라면 경찰은 집회가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였다. 경찰은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사람의 안전을 ‘방치’했다.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 장소에 들어가는 길마저 막고 시민의 보행마저 막으면서 경찰이 보호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이러한 행위가 오히려 세종대로 위를 위험한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히려 이는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찰의 직무유기다.
단절과 직무 유기는 집회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집회 장소에 겨우겨우 들어가 자리를 잡았을 때조차 경찰은 방패를 들이밀며 집회 장소를 침범했다. 영문도 모른 채 계속해서 옆으로 이동하라며 집회 장소에 평화롭게 참여한 참가자들을 압박했다. 단절과 직무유기 그리고 도발이 가득했던 집회 현장은 끝내 부상자가 발생하고 일부는 연행됐다. 언론은 집회 내용보다도 집회 현장에서 일어난 ‘충돌’을 더 주목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잇는 전국노동자대회 정신은 오염됐다. 더구나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모여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조차도 경찰의 행태로 인해 가려졌다.
경찰의 행태에 분노가 먼저였다면, 다음은 이번 전국노동자대회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현 정부에 대한 분노 속에서 사회적으로 퇴진 목소리가 작지 않다. 다만 전국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모여 사회에 던져야 할 목소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하는 대안은 빠진 느낌이었다. 과연 던져야 할 이야기가 퇴진뿐이었까. 윤석열 정권 퇴진 이후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보이지 않았다. 현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꿈꾸는 생각하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도 중요하다. 그런 미래가 빠져 있다면 우리는 또다시 같은 사회를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가 고통받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비정규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있고, 목숨마저 위협받고 있다. 쿠팡에서는 노동자의 잇단 사망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비정규 노동자의 삶에 대한 미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국노동자대회가 끝난 지금도 비정규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보다도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이 더 많이 보도되고 있다. 경찰이 이날 보여준 단절은 분명 잘못됐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절이 아닌 연대다. 여전히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홀로 인내하고 있다. 자기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버텨내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지 54년이 흐른 지금도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국장 (kihghdns@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