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돈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노사법치 기조를 일관되게 견지해 현장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있다”며 노동개혁의 성과를 자화자찬 했다. 지난 8월 기준 1조3천억원을 넘겨 역대 최대 임금체불을 기록했지만, 노동부는 체불임금 청산과 체불 방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공으로 앞세웠다. 노동계는 ‘노사법치’를 가장한 노동 탄압을 멈추고, 노동정책의 전면적·획기적 전환을 촉구했다.
1조5천억원 넘는 체불임금
1.6배 늘어난 노사분규 언급 안 해
김민석 노동부 차관은 지난 1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고용노동정책 성과 및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김 차관은 “그간 산업현장에서 오랫동안 묵인돼 온 건설현장의 자기조합원 채용, 단협상 우선·특별채용 등의 관행이 개선됐다”며 “노사분규 증감과는 별도로 근로손실일수는 과거 정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체불 사업주에 대한 강제수사를 강화하고, 대지급금과 융자자금을 신속하게 지원함으로써 올해 9월 기준 1조2천억원의 체불임금을 청산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손실일수는 윤석열 정부 들어 84일로 문재인 정부(153일) 때보다 54%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노사분규는 증가했다. 노사분규는 노사 의견 불일치로 노조가 작업 거부 등에 돌입해 8시간 이상 작업이 중단된 경우를 뜻하는데, 윤석열 정부 취임 2년 차인 지난해 223건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문재인 정부의 노사분규가 134건임을 감안하면 1.6배가량 높다. 근로손실일수와 노사분규 수치가 이처럼 차이가 나는 이유는 근로손실일수는 파업 기간 중 파업참가자수를 반영해 구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정책을 펼칠수록 노동자들은 파업 등 노조활동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체불임금 청산액이 1조1천856억원에 이른다고 강조했지만, 역대 최고 체불임금액을 기록한 점은 언급을 꺼렸다. 올해 1~9월 임금체불액은 1조5천224억원에 이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대 최대액수를 기록할 전망이다.
5명 미만 사업장 근기법 적용
노동약자지원법 제정 추진 약속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5명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과 노동약자를 지원하는 노동약자지원법 제정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하며 강조해 온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김 차관은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를 위한 단계적 방안 마련을 위해 조사·분석과 사회적 대화 논의를 추진하겠다”면서도 “지불주체인 중소기업이 워낙 어렵다”고 말했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은 “중소기업이 워낙 어려워 설득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은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을 안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며 “정부는 단계적 적용이 아닌 전면 적용 입법안을 당장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약자지원법은 당정이 추진하는 주력 법안으로 연내 발의해 향후 통과된다고 해도 실효성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근로기준법과 같은 강행법규가 아니고 노동약자 지원 근거를 담은 법안이기 때문이다. 노동약자지원법은 미조직 근로자 공제회 설치 지원, 질병·상해·실업시 보호, 노동약자 분쟁 발생시 조정할 수 있는 분쟁조정협의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김문수 장관은 지난 9월 진행한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근로기준법은 안 지키면 공권력이 들어가는데, 노동약자지원법은 공권력이 발동되는 것이라기보다는 1년 예산에서 얼마 내고, 세제 혜택 줘서 재단 만들 때 기금을 만든다든지 공제회 만들 때도 도와준다든지 하는 것”이라며 “별 내용이 없다”고 평가했다.
“진짜 불법 방치, 노동탄압 기조 바꿔야”
노동계는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은 입장을 내고 “정부는 역대 정부 중 가장 낮은 근로손실일수를 기록했다고 자랑하지만, 노사분규건수가 역대 정부 대비 1.6배 증가했고 노조탄압 정책으로 현장 노사관계는 파열음이 생기고 불안정해지고 있다”며 “한국노총은 다시 한번 정부에 국정운영 기조와 노동정책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전환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을 ‘건폭’으로 몰아갔던 정부와 건설사의 공조가 건설노동자들을 임금체불·고용불안으로 내몰았다”며 “산업안전 관련 미이행사항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 대규모 임금체불, 불법하도급 ‘똥떼기’ 등 진짜 ‘불법’은 방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