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고용시장·근로시간 유연화 요구를 담은 한국경총의 건의안에 “수용하기 어려운, (재계의) 일방적인 얘기로 끝날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영역이 일률적인 노동시간의 통제를 받아 효율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언급하며 필요하면 개선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로 답변해 주목된다.
손경식 회장 “경직된 노동시장 활력 불어넣어야”
경총은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경총 8층 회의실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초정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재명 대표와 손경식 회장을 포함해 진성준 정책위의장·안호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조승래 수석대변인·이정문 정책위 수석부의장·김주영 환노위 야당 간사·이해식 당대표 비서실장·김태선 당대표 수행실장 등이 참석했다.
손경식 회장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근로시간에 대한 근로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회장은 “노조의 동의가 아닌 협의만으로도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 있게 취업규칙 개정 절차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이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되는 경우 동의를 받도록 해,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임금체계 개편을 하기 어려웠는데 이런 장벽을 낮춰달라는 요구다.
근로시간 단축과 법정 정년 연장에는 우려를 표했다. 손 회장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법정 근로시간만을 단축하는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할 것”이라며 “법정 정년을 일률로 연장하면 청년들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5명 미만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한 우려와 함께 노조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과 사업장 점거 금지 등을 요구했다. 지난 5월 경총이 국회에 제출한 ‘22대 국회에 드리는 입법제안’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이재명 대표 “경총 제안서, 수용하기 어려워
연구개발직 근로시간 일괄 적용은 개선해야”
‘먹고사니즘’을 강조해 온 이재명 대표는 “먹고사는 문제는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기업활동을 권장하고 원활하게 지원하는 것이 결국 국민의 일자리와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것”이라며 “성장이 곧 복지, 발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재명 대표는 재계의 일방적인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명확히 했다. 이 대표는 “전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쪽에 속한다는 사실은 10대 경제강국이라는 선진국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총 제안서를 봤는데 수용하기 어려운 일방적인 이야기”라며 “죄송하지만 제가 일방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 결국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타협을 해야 하는데 그 길을 좀 찾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 요구를 수용할 여지도 남겨놨다. 이재명 대표는 “(노사 의견) 양자를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연구개발직의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제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와 관련한 언급을 했다. 이 대표는 “노동시간을 일률적으로 정해 놨더니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영역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노동자들에게도 불리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며 “만약 그런 부분이 있다면 개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반도체산업에 대한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예외로 하는 반도체특별법을 당론 발의했다. 신상품 또는 신기술 연구개발 등 업무종사자의 경우 당사자 간 서면합의시 노동시간, 연장·야간 및 휴일 노동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특례 규정을 둔 법안이다. 여당이 반도체산업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당론으로 발의한 날, 경총에서 나온 이재명 대표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다만 이날 이 대표는 “전체 제도를 통째로 바꾸면 노동환경이 전체적으로 급저하시키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겠냐”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이 대표는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사가 적정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데, 이게 정치의 역할”이라며 “쉽지 않지만 긴 시간 정말 마음을 털어놓는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고 정부와 공공에서 보장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측은 반도체산업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여당이 반도체산업에 한해 근로시간 유연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당 내에서 이에 동의하는 분위기는 없다”고 말했다.
강예슬·임세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