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상판결은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의 기준이 되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의 판단 기준을 대법원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례다.
2024. 10. 25. 선고 판결
이 판결은 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 국내에서 근로자를 고용해 사업을 영위할 때, 기준이 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은 국내 사업장만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한 사례다. 다만 근로기준법 제11조만이 주된 쟁점은 아니고, 당해 사건에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지가 선결문제로 판단됐다. 관련해 초심 지노위와 재심 중노위, 그리고 1심 판결(2022. 5. 12. 선고)은 이 사건과 관련한 구제 절차에는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아닌 미국법이 적용돼야 하고, 따라서 노동위원회에 판정 권한이 없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이를 뒤집었다. 2심 판결(2023. 6. 8. 선고)은 준거법을 미국 델라웨어주의 법이나 한국의 근로기준법으로 하는 명시적 합의가 없다고 봤고, 따라서 원고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인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근로기준법 23조 및 28조가 적용되는지와 관련해서 근로기준법이 전부 적용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인지 여부’는 경영상 일체로 평가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이 근로기준법이 전부 적용될 때의 경제적·행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며, 이에 근로기준법 11조의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 외국 본사가 5명 이상 사업장인 경우 5인 이상 사업장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른 결론을 냈다. 재판부는 당해 사건의 준거법은 한국의 근로기준법으로, 이 사건 구제신청에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2심과 마찬가지로 긍정했다. 다만 외국기업이 국내에서 사업활동을 영위하며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사용하는 근로자수’를 기준으로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근로기준법 11조의 사업 또는 사업장은 근로조건의 규율, 근로자들 간의 의견 교환 및 협의, 경영상 해고를 비롯한 해고의 정당성 판단 등을 위한 기초 단위가 되며, 따라서 근로관계의 각종 규율이 통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제적·사회적 활동단위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해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을 구성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위 판결은 구체적 사실관계를 살펴 준거법에 대한 명시적인 합의가 없다는 점을 밝혀 내고, 이러한 경우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인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며(이러한 판시는 속지주의를 채택하는 국내 법의 태도에도 부합한다),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제적, 사회적 활동단위’라는 근로기준법 제11조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한 판단 기준을 설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24. 10. 25. 선고 판결
이 판결은 별개의 법인으로 등록돼 있으나 실질적으로 경영상의 일체를 이루면서 유기적으로 운영된 법인들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한 사례다.
재판부는 법인격의 분리 여부가 독립된 사업 또는 사업장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우선적인 기준이 된다고 하면서도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여러 개의 조직 사이에 단순한 협력관계나 계열회사, 모자회사 사이의 일반적인 지배종속관계를 넘어 경영상의 일체성과 유기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들을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판단기준으로 크게 ① 각 단위별 사업활동의 내용이 하나의 사업목적을 위해 결합돼 인적·물적 조직과 재무·회계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운영되는지, ② 인사 및 노무관리가 조직별로 구분되지 않고 동일한 사업주체 내지 경영진에 의해 통일적으로 행사되는지, ③ 업무의 종류·성질·목적·수행방식 및 장소가 동일한지를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비코트립과 B사의 한국영업소가 같은 사무실 내에서 동종 호텔 판매업을 동일한 방식으로 영위한 것에 주목했다. 또한 각 법인의 직원들이 하나의 통합된 조직으로 편성돼 함께 업무를 수행했으며, 비코트립 소속 직원들 중 상당수가 B사로 소속을 옮겨 근무하는 등 직원들 간의 인적교류도 이뤄졌기에 두 회사 간에 인적·물적 조직과 재무·회계가 서로 유기적으로 운영됐다고 봤다.
또한 B사의 지사장이나 지역관리자가 비코트립 직원들의 인사 및 노무관리 등을 담당했고, 비코트립 내에는 이러한 인사노무 담당자가 존재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이에 형식적인 소속은 다르지만, 실질적으로는 B사에 의해 비코트립 직원과 B사의 한국영업소 직원들에 대한 인사 및 노무관리가 통일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다.
판결의 의의
위 대법원 판결은 세 가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첫째,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 사업장 분리로 인해 상시근로자수가 문제된 사건들은 대부분 노동위원회 단계에서 끝나거나, 하급심에서 종결돼 대법원 판결에 따른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동안 실무적으로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판단 기준을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정당성 판단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판단범위 중 사업부 판단 기준의 법리를 차용하기도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분리된 사업장을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볼 수 있는지에 법리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별개의 법인 사이에서도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판단될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동안 노동위원회 판정 또는 하급심에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인정된 사례 중 대부분은 개인사업자 사이의 관계거나, 주된 법인이 있고 같은 사업주 명의로 법인등록이 되지 않는 업체가 있는 경우였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법인이 분리돼 있더라도 하나의 사업장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다.
셋째, 보통 회사측에서는 두 사업체를 하나의 사업장으로 판단하는 것은 마치 5명 미만으로 운영되는 회사의 법인격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상시근로자수 산정을 위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판단은 법인격 부인과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근로기준법 11조의 입법 취지를 언급한 2022누44493 판결의 법리가 대법원에서는 인용되지 못하였다. 물론 ‘근로기준법이 전부 적용될 때의 경제적·행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고, 그동안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한 누적된 법리에 비춰 볼 때도, 2023두57876 판결이 제시한 법리가 보다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2022누44493 판결이 지적하고자 했던 우리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 조항의 모순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점이 있다.
우리 법은 ‘직접’고용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을 상시근로자수에 포함시킨다. 즉, 노동자 3명을 직접고용하고 100명을 용역업체를 통해 사용하더라도 해당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전부 적용되지 않는다. 노동자 3명을 고용하고 비임금 노동자 1천명을 고용하더라도 노동자 3명에게는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 법이 근로기준법 적용에 있어 상시근로자수를 기준으로 차등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항을 합헌이라고 결정한 것이 전술한 업체들과 사업장을 분리해 5명 미만으로 위장한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근로기준법 11조는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용’이라는 표현에 좀 더 주목할 수는 없을까. 비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면, 간접고용으로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하면 사용이 아닌가.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