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노동자라면 누구나 다 알지만, 기업과 고용노동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이 있다. 누가 진짜 사용자냐다. 누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누가 노동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통제하는지 현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 안다. 단지 서류에만 사용자가 실제와 다르게 쓰일 뿐이다. 아리셀 참사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공단에는 불법적인 인력공급과 도급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이 횡행하고 있다. 노동부가 진짜 사장들이 저지르는 부당노동행위에 눈을 감고, 중간관리자에 불과한 하청업체 사장들의 중간착취에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셀 참사 이후에도 노동부는 제조업 파견 합법화를 주장할 뿐, 공단지역의 불법적인 하도급 구조에 대해서 제대로 된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반월·시화공단에 있는 동서페더럴모굴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해고된 지 두 달째다. 이들을 해고한 것은, 형식적으로는 하청업체인 에이쓰리HR이다. 하청업체는 ‘원청인 동서페더럴모굴이 도급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과관계가 뒤집어진 것이다. 동서페더럴모굴이 도급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해고된 것이 아니라, 원청이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위해서 도급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동서페더럴모굴은 기초질서와 근무시간 미준수, 근무지 이탈, 생산수량 미달 등 도급계약해지 사유를 나열했지만 이것이 거짓말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노동자 해고의 진짜 사유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조합원들만 새로운 업체에 고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명백해진다.

2010년 대법원은 ‘원청회사가 사내하청업체의 폐업을 유도하는 행위로 사내하청업체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하는 지배·개입행위는 부당노동행위라고 밝히고, 원청이 구제명령을 이행할 주체로서 ‘사용자’라고 판결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부당노동행위 소송에 대한 판결인데, 동서페더럴모굴에서 해고된 하청노동자들도 그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무려 14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원청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사법부, 판결에 맞게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제도화하는데 게을렀던 국회, 원청의 부동노동행위에 대해 관리 감독을 하지 않는 노동부의 무책임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을 때 업체폐업으로 해고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동서페더럴모굴만이 문제가 아니다. 올해 7월25일 유럽연합(EU)의 ‘공급망 실사지침’이 발효됐다. 기업이 자신과 자회사, 그리고 지배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급망 내에 있는 기업의 인권침해와 환경문제에 대해 실사해, 경영에 반영하고, 전체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이해관계자로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지배력을 행사하는 기업에 대해 교섭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실사지침의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EU는 기업이 자회사를 포함한 협력업체의 노동권 침해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말은 진짜사장인 동서페더럴모굴만이 아니라, 동서페더럴모굴로 전기차 부품의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납품을 받는 현대위아도 해고사태의 책임 당사자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현대위아는 해고노동자 문제 해결에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

하청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겠다고 결심한 순간 해고를 당해 거리에서 긴 세월을 싸워야 하고, 진짜 사장을 찾기 위한 지난한 소송의 길을 걷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투쟁을 시작한 동서페더럴모굴 하청노동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더불어 비록 두 번 국회를 통과하고 두 번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지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으로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법 개정 이전에라도 노동부는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 작업을 직접 지시하고 감독했던 동서페더럴모굴이 해고된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임을 밝히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어 노조와 교섭에 나서도록 하는 일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work21@jinbo.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