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원 객원기자/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오스트리아의 정치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극우 성향의 자유당(FPÖ)은 지난 9월29일 총선에서 29%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183석 중 58석). 오스트리아 역사상 극우 정당이 전국 선거에서 첫 승리를 거둬 노동자 계층의 표심이 극우로 향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더욱 놀라운 점은 노동자 계층 절반가량이 FPÖ를 지지한 점이다.

한때 노동자의 대표 정당으로 자리 잡았던 사회민주당(SPÖ)은 이번 선거에서 노동자 지지층의 상당 부분을 잃으며 41석을 얻는데 그쳐 21%라는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했다. 635만명의 유권자 중 과거 SPÖ를 지지했던 것으로 나타난 18만명이 이번 선거에서 투표를 포기했다.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는 144만명에 이른다. 오스트리아 정치의 중심이 점차 극우로 이동하고, 노동자 계층이 전통적 좌파 지지에서 멀어지는 배경은 무엇일까?

FPÖ는 요르그 하이더의 지도 아래 현대적 극우 정당으로 변모했다. 하이더는 1986년에 당 대표로 선출된 후, 반이민 정서를 이용해 기존에 노후화된 보수적 이미지를 극우 포퓰리즘으로 전환했다. 1993년 하이더는 ‘오스트리아 제일’(Austria First)이라는 반이민 국민투표 청원을 주도하며 극단적인 이민 제한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반이민 정서는 정치 주류로 확산했다.

하이더가 극우 정당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포장하며 인기를 끌었고, 그의 지도 이후에도 FPÖ는 같은 노선을 유지했다. 하이더의 카리스마와 대중적 매력은 자유당의 기반을 확대했고, 이는 노동자 계층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로 부상했다. 반면, SPÖ는 노동자 계층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점차 기반을 잃어갔다. 이는 FPÖ가 단순한 극우 정당을 넘어, 기존의 좌·우파 구도를 허무는 중요한 변곡점을 마련하게 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SPÖ는 노동자 계층의 60~70%의 지지를 받았다. 최근 오스트리아의 정치 지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SPÖ는 이제는 FPÖ에 밀리고 있다. 노동자 계층이 SPÖ를 외면한데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SPÖ는 자신들의 지지층이었던 노동자에게 설득력 있는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SPÖ는 이번 선거에서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 상속세 도입 등의 정책을 내세웠지만, 노동자 계층이 당장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에 비해 이러한 정책이 너무 간접적이고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이들은 SPÖ의 정책이 노동자들이 직면한 생활비 상승, 일자리 불안 등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둘째, SPÖ는 이민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세우지 못했다. 노동자 계층은 경제적 불안과 직업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이민을 지목하고 있으며, 이민자들이 공공서비스와 복지시스템에 부담을 준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SPÖ는 이민에 대해 더 포용적인 정책을 주장했는데, 이는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자에는 소외감을 안겨주었다.

셋째, SPÖ는 노동자 계층의 변화하는 가치관을 따라잡지 못했다. 과거에는 좌파의 사회적 진보와 평등에 대한 가치관이 노동자 계층에게 매력적이었으나, 최근 노동자들은 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FPÖ는 이러한 보수적 가치를 반영해 강력한 국가 정체성과 민족적 자부심을 강조했고, 노동자 계층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반면 SPÖ는 사회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FPÖ의 지지율이 상승한 또 다른 요인은 반이민 정책과 더불어 러시아와 관계에 대한 입장이다.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이는 FPÖ가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FPÖ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 제재와 추가 군사 원조에 반대하고 있다.

FPÖ의 부상은 단순히 오스트리아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고, 유럽에서 점차 강화되는 극우 정당의 성장세를 상징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FPÖ가 노동자 계층을 포함한 광범위한 유권자층을 흡수함으로써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중심축을 극우로 이동시킨 것처럼, 유럽 각국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

FPÖ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노동자 계층이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 정체성 문제와 안전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좌파 정당들이 단순히 경제적 평등과 복지 강화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다층적인 접근을 통해 노동자 계층의 변화를 반영한 정책을 개발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유럽 전역에서 극우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SPÖ와 같은 전통적 좌파 정당들이 노동자 계층을 포함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윤효원 객원기자/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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