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연극 동호회의 배우모집 공고에 한 지원자의 댓글이 화제였다. “매일 연기하고 있다. 오늘도 회사에서 연기했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카드값에 대출이자에 나갈 돈을 생각하며 ‘나’를 지우고 일하는 이들의 공감을 샀다. 한편으로 험난한 사회생활을 견디려면 회사에 ‘낄낄메이트’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소소한 일로 낄낄대며 마음을 나눌 동료가 중요하다는 취지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한울 공인노무사(32·사진)가 최근 <매일노동뉴스> 지면 칼럼을 통해 처음으로 커밍아웃했다. 그는 “‘노동자인 나’와 ‘퀴어인 나’를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일하면서 커밍아웃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애인과 헤어진 다음날 업무 미팅에서 ‘남자친구 있어요?’라는 질문을 듣고 동료들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벽장에 갇힌 채” “완벽한 타인으로만 지내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한울 노무사는 “퀴어노동자가 커밍아웃할 수 있도록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2년째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다.
- 공식적인 첫 커밍아웃인가.
“그렇다. 가까운 친구들은 알지만 부모님도 모르신다. 일터에서 커밍아웃한 적 없다. 상상하지 않은 일이다. 평소 다른 사람들과 연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익숙했다. 특히 먹고 사는 일과 그 외의 일은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같이 일하던 동료가 커밍아웃하는 걸 보고 ‘말해도 되는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굳이 왜 해야 할까’라고 생각했다. 얻을 것보단 잃을 게 많을 것 같았다.”
- 지면을 통해 커밍아웃하게 된 배경은.
“애인과 금요일에 헤어진 다음날 요가 지도자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연애가 대화 주제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저도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동안 연애 이야기가 나오면 순간순간 거짓말로 임기응변해 왔는데 마음이 슬펐다. 헤어진 다음날이라 그런가. 하하,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요가 수련에서 비폭력은 중요한 태도인 만큼 소수자성을 받아들여 줄 것 같았다. 커밍아웃 이후 주변 반응은 ‘헤어져서 어떡하냐’더라.”
- 일하는 공간에서 커밍아웃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성정체성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컸다. 요가 강사는 개인 SNS가 명함 역할을 한다. SNS에 퀴어활동 사진을 올리고 싶었지만 취업이 안 될까 걱정돼 올리지 않았다. 프리랜서라서 커밍아웃하는 데 좋은 점도 있었다. 다른 강사들과 떨어져서 일하기도 하고, 수업을 자유롭게 진행하기 때문에 수강생들에게 지난 6월 ‘프라이드 먼스’(퀴어와 앨라이가 모여 행진을 하는 등 자긍심을 높이는 달)를 소개하기도 했다.”
- 퀴어노동자가 커밍아웃할 수 있는 일터 분위기는 어떤 것일까.
“네트워크에서 설문조사를 했을 때 1위는 성소수자 동료가 있는 것이었다. 2위는 차별적 발언을 저지할 동료가 있는 것, 3위는 동성연인의 신혼여행 휴가 인정 등 사내 복지제도가 있는 것이었다. 커밍아웃한 동료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당사자에게 물어봐도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건 본인에게 커밍아웃했다고 다른 사람에게 아웃팅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 성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고 일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네트워크에서 퀴어노동자 정신건강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가장 필요한 건 교육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알게 되면 이렇게(차별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다. 차별금지법도 중요하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세상의 모든 차별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생기고 괴롭힘 행동에 이름이 붙으면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과 같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트랜지션(성확정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아프면 쉴 권리가 확장돼야 한다. 세상에 앨라이(연대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