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자 23명이 목숨을 잃은 화성의 공장 화재 참사로 재판에 넘겨진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이사 등 관계자들에 대한 첫 재판이 공전했다. 검찰의 수사기록을 변호인들이 열람하지 못한 영향이다. 박 대표측은 수사기록 열람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유족측은 “참사가 발생한 후 120일 동안 박 대표는 아무런 사과도 없다”며 유감을 표했다.

검찰 자료 3만5천쪽, 법원 “재판 지연 문제”

수원지법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 부장판사)는 21일 박 대표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의 1차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어 박 대표와 그의 아들인 박중언 경영총괄본부장 등 8명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은 시작 약 16분 만에 종료됐다. 아리셀 변호인은 “검찰과 합의한 바에 따르면 열람실 사정으로 10월30일부터 증거기록 등사가 가능하다”며 수사와 증거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검찰이 제출한 자료는 약 3만5천쪽으로 전해졌다. 통상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에 관한 변호인 입장이나 증거기록과 증인신문 절차 등을 논의한다. 하지만 수사기록 열람·등사가 되지 않아 절차 논의 자체가 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재판장은 “구속기한이 6개월인데 피고인들이 (증거기록을) 복사하는 데 한 달가량 걸리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며 “재판 외적인 문제로 재판이 지연되는 것은 문제다. 검찰에서 물적·인적 시설을 확보해 이를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열람·등사 후 검토 시간까지 고려해 다음 재판은 11월25일 열릴 예정이다.

절차 논의가 되지 않자 검찰의 공소사실 부분에 관한 아리셀측의 입장 표명 자체가 없었다. 공소사실 부인에 대해 재판부가 묻자 변호인은 “객관적인 사실관계는 인정한다”면서도 “평가나 판단을 구하는 부분에 대한 법리적 평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자체는 인정하지만, 유무죄를 따져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아리셀측 입장 표명 없어, 유족 “신속한 재판 촉구”

유족측은 참사 발생 120일 만에 재판이 시작됐지만 진행이 되지 않은 점을 성토했다. 김태윤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한 유족들의 마음을 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 수 없다”며 “법원이 시간 끌기로 일관하는 아리셀에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족을 지원하는 하태승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증거를 확인하는 데만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날아갔다”며 “신속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법정에 나오지 않은 박순관 대표를 향해서도 비판했다. 하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첫 공판에 출석할 의무는 없다지만 아무런 사과가 없는 것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강조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대책위원회는 12일째 경기도 광주에 소재한 아리셀 모회사 에스코넥 본사 앞에서 경영진의 성실한 교섭을 촉구하고 있다.

아리셀 참사는 지난 6월24일 경기도 화성 리튬전지 공장에서 전지에 불이 붙으며 발생한 화재로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대형사고다. 수사 결과 아리셀이 군납 기일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목표 생산량을 늘리고 인력파견업체 메이셀로부터 비숙련 이주노동자를 대거 불법파견 받고도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 대표는 지난달 24일 구속기소 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두 번째로 원청 대표가 구속기소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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