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에 걸친 사회적 대화 무산
약 주고 병 주는 꼴이었다. 무대는 2018년 5월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였다. 먼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이 여야합의로 통과했다. 이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골자로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합의를 끌어내지는 못한 채 산회했다. 22일 새벽 2시30분이었다. 24일 밤 9시에 소위를 속개해 논의를 마무리하겠다는 후속일정도 밝혔다.
홍영표 국회 환노위원장이 등장한 것은 법안심사소위가 열리던 21일 밤 12시께였다(그는 열흘 전인 5월11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홍 위원장은 회의장을 찾아 환노위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한 논의를 마쳐 달라고 촉구했다.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과 공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 부위원장의 주장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문제를 최저임금위원회로 넘겨 주면 6월 내에 논의를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홍 위원장은 “8개월간 논의를 끌어오다 지금 와서 논의할 시간을 또 달라는 거냐?” “지금은 국회가 결론을 내려야 할 때”라며 단박에 거절했다. “민주노총은 고집불통이다. 양보할 줄 모른다”며 대놓고 민주노총을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22일 새벽 1시20분쯤 국회 앞 연좌 농성장에서 “5월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노총은 어떠한 사회적 대화 기구 회의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민주노총의 공식적인 성명서는 새벽 3시30분께 나왔다). 환노위 법안심사소위가 관련 논의를 최저임금위원회로 이관하는 대신 법안의 강행처리를 기정사실화했다는 이유였다.
한국노총은 긴급 회원조합대표자회의를 열어 한국노총 출신 최저임금위원 전원이 사퇴하고 최저임금위원회의 모든 회의에 불참하겠다고 결의했다(5월28일).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저지 총파업대회’(5월28일)를 열면서도 최저임금위원회에 남았던 민주노총도 한국노총의 뒤를 따라 최저임금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5월30일). 한국노총은 “국회가 최저임금법 개악안을 강행처리함으로써 최저임금법이 죽고 사회적 대화도 죽었다”고 선언하며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떠났다(6월10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합의하자”
국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논의하는 가운데 경총이 양대 노총의 주장에 동조해 이 건을 최저임금위원회로 이관하자는 데 가세한 것은 사건이었다. 경총은 5월21일, 양대 노총과 함께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해 3자 공동입장을 밝혔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노사중심성하에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결정되도록 국회는 이를 존중해 법안심사를 중단해 주시길 정중히 요청드린다.” 다른 경제단체들은 반발했다. 특히 최저임금에 민감한 중소기업중앙회는 ‘배신’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경총을 비판했다(경총은 23일 국회처리로 입장을 바꿨다).
경총이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한 배경에는 당시 송영중 경총 상근부회장이 있었다는 설이 파다했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이 송 상근부회장에게 최임위 재논의를 요청했고 송 부회장이 이를 수용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7월 초 송 상근부회장이 경총 임시총회에서 해임되는 빌미가 됐다.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최종회의를 앞두고 물밑에서 거론된 것은 국회 대신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루자는 것이었다. 5월24일 저녁 9시에 회의가 열리니 당일 하루 동안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마무리하자는 이른바 ‘one-day, one-point’ 사회적 대화를 하자는 것이었다. 최저임금제도 개선안을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건 처음은 아니었다. 그해 1월에는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이를 제안하기도 했다(2018년 1월26일). 이번 발단은 (노사정대표자회의 불참을 선언한) 민주노총이었다.
5월23일 아침, 출근길이었다. 민주노총 간부가 개인 의견이라며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산입범위 문제를 다룰 수 없겠느냐고 물어 왔다. 노사 당사자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한 사안인 데다 사실상의 합의까지 있었던 사안이라 one-day, one-point 대화에서 합의를 보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한국노총은 찬성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로 다시 넘긴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었다. 환노위 여당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노사가 합의하면 그 안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정오 무렵 민주노총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논의 경과를 전달했다. 답이 온 건 오후 4시께. “홍영표 원내대표가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들러 사회적 합의에 ‘깽판’을 놓았으니 홍 대표의 사과가 전제돼야 합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가 사과보다 시급하지 않나요?”라는 나의 질문은 외면당했다. “사과하겠습니다.” 한정애 의원이 전달한 홍영표 원내대표의 입장이었다(5월23일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이라 홍 대표는 봉하마을에 가 있었다).
“홍 대표의 사과가 전제조건인 것은 맞다. 사과라는 건 유감 표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한 국회 논의를 중단하고 이를 최저임금위원회로 넘겨야 그게 진정한 사과다.” 홍 대표의 사과 의사를 전달하자 나온 민주노총의 입장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로 넘길 만한 시간은 없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24일 밤 9시에 환노위 법안심사소위가 열리고 25일 새벽이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당장 2019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7월부터 적용해야 하는데 6월 국회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지금 개입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다시 한번 검토해 주시죠”.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 정도였다.
최종적으로 민주노총의 거부 의사를 전달받은 건 저녁 7시가 넘어서였다. 민주노총이 동의하더라도 경총과 대한상의, 그리고 고용노동부의 입장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이 동의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손사래를 치면서 상황은 일찌감치 종료됐다. 개인의 비공식적인 제안을 받고 일만 키운 꼴이었다. 한정애 의원한테 결과를 통보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환노위에서 알아서 하세요.”
“대통령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25일 새벽, 국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법안은 청와대로 넘어왔다.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동해 국회의 재의를 요청할 수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양대 노총은 대통령의 거부권을 촉구하고 나섰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이 나섰다. “청와대에 요구해서 대통령의 공포를 법정기일 내에서 최대한 늦추겠다. 그동안이라도 사회적 대화를 해 합의가 이뤄지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 이번에는 한국노총이 거부했다.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민주노총이나 경총에겐 제안조차 하지 않았다. 국무회의는 6월5일, 최저임금법 개정법률 공포안을 의결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기까지 세 번에 걸친 사회적 대화 시도는 모두 무산됐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재논의는 국회가,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의 one-day, one-point 대화는 민주노총이, 그리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전제로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자는 제안은 한국노총이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의 확대라는 걸림돌을 넘지 못한 채 휴지기로 들어선다.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 김수영의 ‘절망’이라는 시다. 이 시는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구절로 마무리된다.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tjpark0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