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음식점에 맥주가 무제한이라니 본전 생각에, 아니 본능 따라 마구 마셨다. 잠시 속 비울 생각도 못 하고 잔을 비운 탓에 집에 오는 길 신호가 묵직했다. 조금만 더, 버텨 봤지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면서는 전에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 끔찍한 상상을 해 봤는데, 실은 별일도 아니었다. 먹고 싸는 문제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을 뿐이다. 선선하던 가을밤 옥상에 올라 멀리 한강에서 쏘아 올린 불꽃을 구경했다. 멀어 작게 보였지만 제법 예뻤다. 큰 것이 번쩍 터지면, 펑 소리가 뒤늦게 달려왔다. 연기 자욱했다. 옆자리 누군가 전쟁 난 줄 알겠다고 농을 쳤다. 주관사가 원래 무기 만드는 곳 아니냐며 아는 체가 따랐다. 죽고 사는 문제가 마냥 멀지만은 않구나 싶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 한강이 공식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죽음들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겠냐고 말했단다. 멀리서 펑펑 터지는 폭탄 소리가, 죽어 가는 사람들 비명이 뒤늦게 달려와 내 귀에 생생했다. 그가 울며 쓴 소설 속 죽음들이 또한 뒤늦게 내 눈앞에 선명했다. 시퍼런 가을 하늘에 둥둥 떠 날던 오물 풍선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보면서, 또 남과 북 사이에 오가는 서슬 퍼런 말을 들으며 전에 없는 위기감을 느끼고 만다. 먹고 싸고 죽고 사는 일이 참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