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노동자 자살의 업무기인성 여부와 관련해 기존의 대법원 판례 법리는 ‘사회평균인 입장’을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는 결국 해당 노동자의 자살에 관해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살할 정도는 아닌 정도의 정신적 고통”이라거나, 나아가 “그 정도 일로 죽었다면 그것은 결국 본인이 나약한 탓”이라는 매우 폭력적인 논리로 귀결된다.

즉 대법원은 2012. 3. 15. 선고 2011두24644 판결에서 “근로자가 자살한 경우에도 자살 원인이 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는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 등을 기준으로 해 판단하게 되나, 당해 근로자가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는 사회평균인 입장에서 앞서 본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던 것이다.

반면 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은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해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이는 전원합의체로 판례를 변경한 것은 아니나, 실질적으로는 대법원은 2012. 3. 15. 선고 2011두24644 판결과는 달리 노동자 자살의 업무기인성을 최종적으로 사회평균인을 기준으로 보는 관점을 완화 내지는 사실상 폐기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원합의체 판결로 공식적으로 대법원의 입장이 변경된 것은 아니어서, 법원이 여전히 기존 판결의 법리를 원용해도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근로복지공단이나 인사혁신처와 같은 행정청에서는 여전히 기존의 폭력적 논리의 판결 법리를 원용해 자살 노동자에게 불리한 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인적 취약성을 자살의 결정적 요소로 돌린 후, 자살 노동자가 겪은 업무상 요인이 사회평균인 입장에서는 자살할 정도가 아니므로 업무기인성이 없다는 식의 논리는 지극히 복잡다단한 인간의 내면, 인간의 심리와 그를 둘러싼 환경과의 부단한 상호작용과 같은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요인들을 단지 ‘개인적 취약성의 존부’라는 하나의 요소로 환원해 단순화하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공동체로서 사회를 구성한다. 또한 모든 사람은 개성과 장점과 함께 필연적으로 단점을 안고 살아간다. 사회는 각자의 장점과 단점에 점수를 매겨 장점에 상을 주고 단점에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성원들끼리 서로 도와 장점은 더욱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고 지지해 사회 성원들의 삶의 토대를 단단히 구축하는 것에 그 존재의 목적이 있다.

어느 사회든 다소 간의 개인적 심리적 취약성이 있는 구성원들은 상존한다. 그렇다면 사회 성원들 서로가 보완하고 지지하는 방식으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도록 하는 것이 공동체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사회평균인’과 ‘평균인에 미달하는 자’, 즉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나눠 개인적 심리적 취약성이 있는 구성원들을 평균인에 미달하는 자, 비정상인 자로 취급하는 것은 이들에게 벌을 주고 질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인사혁신처와 같은 행정청과 하급심법원은 ‘사회평균인 입장’의 관점을 사실상 폐기한 새로운 판례 법리를 따라야 한다. 관련 분쟁이 대법원까지 다투어진다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명백하게 ‘사회평균인 입장’을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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