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한 포기 2만원… 폭등한 물가에 손님도 상인도 ‘울상’”(세계일보 9월13일 16면), “폭염에 어류 떼죽음… ‘추석 대목? 얼음값도 못 건져’”(경향신문 9월13일 1면).
보름 전 ‘한가위 연휴’를 앞두고 언론이 쏟아낸 기사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두 신문은 ‘추석 앞둔 전통시장 가보니’ ‘서천수산물특화시장 르포’ 같은 문패를 붙였다. 세계일보는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경향신문은 충남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을 찾아가 한가위 물가 기사를 썼다.
한가위와 설날, 가뭄, 태풍, 여름 폭우 등 계기 때마다 우리 언론은 늘 원인을 찾는답시고 현장까지 가서 물가 기사를 쓴다. 이런 기사는 물가 폭등의 진정한 원인 찾기는 늘 뒷전이고 독자를 자극할 만한 소재 찾기에만 집중한다.
세계일보는 경동시장에서 평소 4천원 정도였던 ‘배추 한 포기가 2만원’까지 폭등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수산물특화시장에서 “얼음값도 못 건졌다”는 상인의 한숨을 담았다. 물가 폭등의 원인을 시장 상인과 차례상 보러 나온 소비자에서만 찾으려니 기사 안에 모순도 일어난다. 수요-공급곡선에 따르면 대체재가 없는데도 공급에 비해 수요가 폭발했을 때 가격이 폭등한다.
성리학 문헌 어디에도 상다리 휘도록 차례상 차리라는 규정은 없다. 여성만 상을 차리는 풍습도 조선 후기에나 생긴 악습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다 안다. 세계일보에 등장하는 60대 주부(64)조차 “명절 때마다 겉절이랑 배추전을 했는데, 이번엔 메뉴를 바꿔야 할 것 같다”며 대체재를 찾았다. 이젠 명절 차례상도 얼마든지 대체재가 있다. 아예 차례를 안 지내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은 명절 때마다 시장 찾아가 폭등하는 과일과 채소, 생선값을 언급한다. 차라리 값싼 대체 차례상을 소개하는 게 국가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다. 얼음값도 못 건지는데 장사를 계속할 상인은 없다. 경향신문은 가을 전어는 물량이 없는데도 가격만 2배로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전어는 차례상이 올리는 생선도 아니다. 이런 기사는 늘 수박 겉핥기만 한다. 세계일보도, 경향신문도 모두 한가위 앞 물가가 폭등한 원인을 ‘폭염’ 탓으로 돌린다. 상품은 생산자에서 시작해 최종 소비자까지 수많은 중간 단계를 거쳐 최종 소비자가격이 결정된다. 전통시장 상인과 소비자는 명절 물가를 결정하는 맨끝단에 있을 뿐이다.
해외 배낭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비밀이 있다. 한국보다 물가가 비싸다는 영국, 프랑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는 노동자(요리사)의 노동력이 투입된 식당 음식값은 우리보다 훨씬 비싸지만, 채소나 과일 같은 농산물 가격은 우리보다 싸다. 나는 말도 안 되게 싸게 산 납작복숭아 2kg를 사서 며칠 동안 가지고 다니다가 다 못 먹고 버린 적도 있다. 이걸 요리사가 조리해서 식당에서 팔면 가격이 몇십 배가 뛴다. 유럽에 농산물 가격이 싼 이유는 정부가 중간 유통에서 폭리를 취하는 세력을 잘 통제해서다.
한국 언론은 명절 때마다 최종 상인과 소비자만 찾아가 물가 기사를 쓴다. 명절 물가가 폭등했다고 농민과 어민이 떼돈을 벌지도 않는다. 한국 언론은 명절 때마다 농어민 등 1차 생산자에게 가격을 후려쳐 싼값에 사서, 시장에는 비싸게 내다 파는 재벌 유통업자는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고, 대안 없는 기사를 반세기 넘게 반복한다.
세계일보와 경향신문은 그나마 낫다. 그래도 두 신문은 전통시장 가서 상인과 소비자에게 질문이라도 던졌다. 유력 정치인들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며 명절 취재를 때우는 최악의 부류도 있다. 서울신문은 9월13일 5면에 안성시 농협안성농식품물류센터에 찾아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사진에다 ‘추석 물가 점검하는 한동훈’이란 제목을 붙여 보도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