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희 거제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사무국장

제 한 몸 던지면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전 국민에 알려 냈던 2022년 거제·통영·고성 지역 조선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공권력 투입을 언급하며 직접 개입했다. 투쟁이 마무리된 뒤 고용노동부에서 ‘조선업 이중구조 개선, 원·하청간 격차 해소’를 내세우며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출범시키면서 뭔가 해결할 것처럼 떠들었지만 여전히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 당했다. 계속 그렇게 시키면 시키는대로 노예처럼 살라는 것이 조선산업 원청과 정부의 답변이었다.

속칭 K-조선이 중국과의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고급 기술력이다. 중국의 저가 공세 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기술력이 보전·발전되지 못한다면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K-조선 빅3 원청은 이런 상식을 벗어난 정책으로 일변하고 있다. 조선산업이 불황에서 호황으로 바뀌고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는데도 K-조선 호황의 주역인 노동자들에 대한 대접과 존중은 개미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노동자들은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는 곳으로 떠나고, 산업역군이었던 분들은 정년퇴직으로 떠나고, 이런 대접 받고는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고 다들 떠나고 있다. 수주는 해 놓고 배 만들 고숙련 노동자가 없어 위약금을 지불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고 위험요소를 제거해 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부족한 인원을 한국어도 못하는 E-7-3 비자 이주노동자로 채워 400시간 넘게 일을 시키겠다는 것이 오만한 원청 자본의 정책인 듯하다.

이렇게 가다간 조선산업이 지금의 호황을 누릴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도 죽고 조선산업도 죽는다.

대표적인 3D업종 중 하나인 조선산업은 정말 돈 벌어먹기 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곳이다. 그런데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그나마 쇠를 녹이고, 녹을 제거하면서 소금꽃을 피워 가며 일하는데도 그만큼의 대가를 받을 때는 참고 일했지만 그 메리트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심지어 2016년 7월부터 조선업을 고용위기 특별지원 업종으로 선정하면서 시작해 올해 6월30일까지 이어진 4대 보험 체납처분 유예 정책으로 인해, 일부 악덕 업체들은 임금에서 공제된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료를 개인 호주머니로 착복하면서 그 피해는 노동자에게 되돌아가게 됐다. 그 피해 금액만 수천억원에 이르는데도 노동자들의 피해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저임금·고위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체불까지 발생하고 있어 조선산업 현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고개를 돌린 지 오래다.

2022년 거제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원·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저임금, 고위험, 다단계 하도급 고용문제 해결 없다면 조선소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답변이 67.3%나 나왔다. 실태조사 결과는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정말 대안이 없는 것일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과 금속노조는 수없이 제안하면서 다시 살맛 나는 조선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았다. 임금인상 및 복지 확대, 다단계 하도급 금지, 위험의 외주화 금지, 원청 사용자성 강화, 노조할 권리 보장, 포괄임금제 금지, 원청 정규직 채용 확대, 각종 협의체에 사내하청지회 참여 보장, 불공정 계약 근절 등이다.

이런 문제가 선결되지 않으면 떠나간 노동자들은 조선소로 다시 고개를 돌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 배는 누가 만드나. 일할 사람 부족하다고 징징대지 마라. 납기 기한 맞추지 못해 거액의 위약금을 물더라도 고숙련 노동자들의 임금은 안 올려 주고, 계속 열심히 일해 주기만을 바라면서 떨어지는 감만 쳐다보고 있을 것인지 조선산업 원청사와 정부는 판단해야 된다.

거제지역 네이버 카페에는 간혹 조선소에서 일해도 되는지 묻는 글들이 올라온다. 그 답변들을 모아서 정리해 보면 우리들의 답은 이렇다.

“아직도 굳이 조선소에 오고 싶다면, 당장 마음 고치고 다른 직장을 찾아라. 그대는 취업이 걱정되겠지만 조선소는 아직까지도 변화할 생각 없으니, 대접할 생각 없으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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