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사건 원고들의 소속 협력업체와 담당 업무
이 사건 원고들은 현대자동차의 이른바 ‘2차 협력업체’인 한일로지텍 → 한일산업 → 삼현산업으로 소속이 변경되면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서열업무와 불출업무를 수행했다.
서열업무는 현대자동차의 조립라인에 투입될 부품들을 차량의 사양과 조립 순서에 맞추어 정해진 용기에 적입하는 업무이고, 불출업무는 이와 같이 서열된 부품 용기를 조립작업 시간에 맞추어 조립작업자에게 공급해 주는 업무다.
현대자동차는 현대글로비스와 도급계약을 체결해 외부의 부품생산업체가 생산한 부품을 현대자동차 조립라인까지 조달하는 업무를 위탁했고, 현대글로비스는 한일로지텍 등 2차 협력업체에게 부품 조달업무를 재위탁했다.
원고들은 한일로지텍 등 2차 협력업체에 소속돼 외부 부품생산업체로부터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들어온 부품들을 서열하고 불출하는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현대자동차에서 서열·불출 업무를 수행하는 협력업체들은 한일로지텍 등과 같이 현대글로비스와 계약을 체결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2차 협력업체들도 있고, 현대자동차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1차 협력업체들도 있다.
2. 이 사건 소송의 경과
이 사건의 원고들은 2010년 현대자동차의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과 함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다른 근로자들과 함께 모두 승소했다. 그런데 2020년 10월27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사건번호 2017다15010)은 1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근로자파견 관계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을 모두 인정했으나, 2차 협력업체 소속인 이 사건 원고들에 대해서는 현대자동차가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는지, 현대글로비스가 원고들의 업무에 대해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했는지 등에 보다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대상 판결은 파기환송된 사건에 대한 판결이다.
3. 현대자동차의 상당한 지휘·명령 여부
파기환송심의 주된 심리 대상은 현대자동차가 1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지휘·명령을 한 것처럼 2차 협력업체 소속인 원고들에도 지휘·명령을 행사했는지 여부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아래와 같은 이유들을 들어 현대자동차가 2차 협력업체 소속인 원고들에 대해서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고 판단했다.
(1) 서열지, 서열모니터, 전광판 등에 의한 작업지시
현대자동차가 제공하는 서열지와 서열모니터는 지정된 시각에 지정된 순서대로 부품을 서열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서열작업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명령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현대자동차가 설치한 전광판에는 조립라인의 운영 현황이 표시돼 불출작업 근로자들은 이에 따라 불출시각을 계산해 불출작업을 수행하므로 전광판은 불출작업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명령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2) 현대자동차 생산관리부의 협력업체와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업무 지시
서열·불출업무를 관리하는 현대자동차의 생산관리부는 1차 협력업체와 마찬가지로 2차 협력업체에도, 대표자나 소장들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회의를 소집해 현대글로비스를 거치지 않고 업무에 관한 지시를 하거나 업무에 관한 보고를 받는 등 협력업체를 관리하고, 그 업무에 대해 지시했다.
(3) 현대자동차 조립라인 근로자들의 업무 지시
협력업체 근로자들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작업을 수행하는 현대자동차의 조립라인 근로자들은 협력업체 소속 서열·불출작업 근로자들에게 직접 서열방식에 관해 지시하거나 부품에 이상이 있을 경우 재공급할 것을 지시하는 등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서열·불출작업에 관해 지시했다.
(4) 협력업체의 투입인원에 대한 관리
현대자동차는 협력업체로부터 소속 근로자들의 수, 담당 업무, 급여 현황 등을 주기적으로 보고받아 관리하고, 파업대비 대체 인원 투입계획을 수립하는 등 협력업체의 조직을 관리했다.
(5) 현대글로비스의 실질적 역할
현대자동차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지휘·명령을 행사하고, 협력업체를 관리하는 동안 현대글로비스가 협력업체의 업무에 대해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6) 협력업체의 독자적인 지휘·명령
한일로지텍 등 협력업체가 자체적으로 작업매뉴얼 등을 작성하거나 소속 근로자들에 대해 교육을 실시하기는 했으나, 이는 현대자동차의 지시와 통제하에 이뤄진 것이어서 독자적인 지휘·명령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상 판결은 이상의 이유 등을 들어 2차 협력업체 소속 원고들에 대해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고 다시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4. 대상 판결의 의미
최근 법원은 현대자동차의 2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해서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인하는 판결을 잇달아 선고하고 있다. 대상 판결은 파기환송심임에도 불구하고 2차 협력업체 소속 원고들에 대해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이어서 매우 환영받을 만하다.
원고들이 근무했던 현대자동차 울산4공장의 서열·불출작업은 현대자동차 소속 근로자들, 1차 협력업체 근로자들,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나눠서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서열·불출업무는 조립공정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구축된 현대자동차의 생산시스템에 의해 수행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렇게 수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자동차 소속 근로자들과 1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서열·불출 업무는 현대자동차의 지휘·명령에 따라 이루어지고,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서열·불출 업무는 현대글로비스나 2차 협력업체의 독자적인 지휘·명령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상 판결은 이러한 현실을 확인해 주는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