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현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시선)

막스 베버는 합리성 개념을 논의하면서, 특히 도구적 합리성(Instrumental Rationality)을 강조했다. 베버는 사회적 제도나 법이 그 자체로 정의롭거나 윤리적일 수 없다고 보았다. 오히려 제도는 단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그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제도의 정의로움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막스 베버의 이런 논의를 기반으로 한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제도는 노동자 인격 보호라는 목적에서 도입됐지만,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는 모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각자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회사·정치단체·사회단체와 각 이익단체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제도를 사용한다. 목적에 따라 제도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도가 정립돼 가는 모습이다.

이 현상이 비난받을 만한 일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필자는 말을 아낀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이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달리 변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정의롭지도 불의하지도 않은 이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모습은 어떠할까? 필자는 과거에 이를 혼란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질서 있는 혼란 상태’라고 말한다. 사람들에 의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태계를 이뤘고, 혼란 상태는 여전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름의 암묵적인 규칙들이 만들어졌다. 물론 이 질서는 각자의 이해관계 조정에 따른 결과물이지, 우리가 이 제도를 처음 만들 때 생각했던 질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3년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내 괴롭힘 신고건수는 1만28건이다. 2019년 법 시행(7월~12월) 당시 2천130건과 비교하면 약 4.7배 폭증한 것이다. 노동부의 행정지도 등의 역할은 사실상 마비 상태라고 필자는 진단한다. (물론 영국 등 다른 나라의 유사한 상황을 비교해 볼 때, 이 문제를 전적으로 노동부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이런 가운데 실무에서는 법률에 없는 해석론에 의해 제도 형성이 이뤄지는 양상도 보인다. 직장내 괴롭힘의 다양한 법적 요건이 법원 하급심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반복성·지속성·의도성을 판단 기준에 추가해 직장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또 업무상 우위성이라는 개념은 그 ‘사용’ 여부까지 심리해, 사실상 업무 관련 괴롭힘의 요건별 심리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런 현상은 법원에 이어 노동위원회에서도 나타난다. 하급심에서 언급된 법률에 없는 해석론이 실제 직장내 괴롭힘 사건에 적용해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연히 요건이 늘어난 만큼,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용자의 징계가 취소되는 상황도 상당히 늘었다. 심지어 노동부는 일부 사건에서 가학적인 괴롭힘 행위가 있어도 위와 같은 요건을 들어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는,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해관계자의 복합된 의도에 따라 직장내 괴롭힘 제도는 광범위한 해석을 허용하면서 그 모습이 변해가고 있다. 이는 입법자의 의도가 아닌 시장 현상 그대로 각자의 이해관계를 투영한 결과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제도는 수단일 뿐이다. 이 수단이 달성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인격권 보호는 그리 단순하고 일방적인 현상이 아니다. 분쟁의 상대방은 노동자이며, 이를 판단하는 사용자는 노동자와 이해관계자이고, 쏟아지는 현안을 해결하려는 관청은 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나아가 이 법은 처음 예상과 달리 개별적 노동관계의 거의 모든 현안을 흡수하는 블랙홀 같은 파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법률의 모호성은 다양한 해석론을 만들고 각 이해관계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 피해를 보는 사람은 노동자다. 이해관계자 중 약자인 노동자의 피해는 상당하며,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직장내 괴롭힘 제도는 예방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 제도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법률적 모호성을 해결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재량적 해석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가장 약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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