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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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그룹이 ‘노노 갈등’을 부추겨 그룹 위기 관리를 한 정황이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가 사회적 합의 미이행을 문제 삼자 사측은 식품산업노련 피비파트너즈노조 위원장과 인터뷰 연습을 하고 노조 명의 입장문을 대신 쓰는 등 사측 입장을 대변하게 했다.

“회사 입장 물으면 교섭대표노조로 유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조승우 부장판사)는 지난 4일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혐의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SPC 홍보업무를 총괄한 백아무개 전무에 대한 검찰측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법정에서 2021년 4월13일 백 전무와 전진욱 피비파트너즈노조 위원장의 통화 녹취 파일이 재생됐다. 같은달 1일 피비파트너즈가 사회적합의 이행 선포식을 열었고, 파리바게뜨지회가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던 날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백 전무는 전 위원장에게 “현장취재 온 기자들이 회사 입장을 물어볼 수 있다. 회사 입장을 말하는 건 적절치 않고 교섭대표노조에 확인하라고 할 건데,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통화 직후 백 전무는 홍보실에 ‘기자들이 회사 입장을 문의하면 교섭대표노조로 유도하라’고 공지했다.

백 전무는 곧바로 전 위원장에게 홍보실에서 작성한 전 위원장 명의 입장문을 보냈다. 4천여 제빵기사들이 파리바게뜨지지회를 비난하며 “소모적 갈등 조장을 중단하라”는 내용이었다.

백 전무는 재차 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모 언론사 기자가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인터뷰를 했다”며 “전 위원장이 기자와 통화해 볼 수 있냐. 자신있냐”고 묻자, 전 위원장은 “일단 (기자) 연락처를 달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이 “기자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다고 해야 하나”라고 묻자 백 상무는 “현장 조합원들에게 전달받았다고 하라”고 했다.

“민주노총 고립 전략 준비”

백 전무는 전 위원장과 예상 질문·답변을 주고받기도 했다. 백 전무는 “(오늘 파리바게뜨지회 기자회견) 내용 숙지 했냐”며 “예를 들면 기자가 ‘한국노총은 현장도 안 왔는데, 민주노총 주장 아냐’고 하면 뭐라고 한 건가”라고 물었다.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 SNS 채널과 기존 홍보물을 접했다”고 답했다. 또 백 전무가 “한국노총은 사회적 합의 당사자가 아닌데 어떻게 생각햐냐고 물으면”이라고 말하자 전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는 노동환경 이야기인데, 우리가 교섭대표노조고 지난 3년간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결실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백 전무는 사측이 작성한 입장문을 언급하며 “길게 이야기할 필요 없다. 정리된 입장문을 전달하라”고 말했다.

‘노노 갈등’을 부추기라는 말도 나왔다. 백 전무는 홍보실 직원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노노 갈등 앵글로 유도 가능한 분위기인지”라고 물었다. 황재복 SPC그룹 대표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고립 전략 최후 선택으로 준비하겠다”고 했다.

백 전무의 행위는 더 대범해졌다. 홍보실에서 전 위원장이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한 것처럼 작성한 기사를 언론사에 배포했고, 실제 기사화됐다. 박갑용 식품산업노련 위원장 명의의 입장문을 홍보실에서 작성해 언론사에 기사화를 부탁했다. 백 전무는 법정에서 언론사들에 광고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백 전무는 허 회장의 지시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이 백 전무가 김아무개 상무에게 파리바게뜨지회 집회·시위 현황을 보고한 사실을 언급하며 “김 상무가 허 회장의 비서냐”고 묻자 백 전무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한편 백 전무는 검찰 수사관에게 뇌물을 주고 SPC그룹 수사정보를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지난 7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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