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민석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뉴라이트의 근원에는 '아시아'에 대한 멸시가 있다. 아시아에는 개인도, 자유도 없기에 시장경제의 발전을 지표로 하는 사회발전이 존재하지 않고 정체돼 있다는 이들의 논리는 ‘근대이해’를 넓히지 않고는 비판하기 까다롭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이란 결국 '소유적 주체'를 의미한다. 서구에서 자유주의가 태동한 이래 근대적 개인이란 곧 (민법적 의미의) 법적 주체로, 개인의 삶이란 생명권을 포함하는 여러 권리의 다발로 구성돼 있었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와 달리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국가 관료제에 대한 견제를 핵심으로 한다는 데서 비롯된 특질이다. 개인은 국가로부터 확보된 개인적 영역의 '소유자'로서, 마르크스주의 용어를 빌리자면 '노동력 상품'의 소유자로서 기능한다.

개인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사회질서를 형성해 나간다. 시장경제란 자유로운 선택들이 집적돼 형성된 정교한 구조물이라는 게 애덤 스미스 이래 자유주의의 ‘근대이해’다. 근대적 개인을 이렇게 규정할 때 중요한 건 어떠한 사회적 토대 위에서 개인이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다.

뉴라이트 이론가 이영훈은 “조선왕조가 '농노제' 사회”라고 주장해 왔다. 경제사학 용어로는 ‘국가적 농노제’라 한다. 여기서 농노제란 생산관계로, 소농경영이 이뤄지는지를 기준으로 한다. '소농자립화'를 축으로 조선후기를 독해하던 이영훈은 근대적 개인에 대한 이해가 자유주의적 논리에 근사하게 되자 입장을 바꾼다. 이제 그는 농노제를 피지배계층과 지배계층이 지배와 보호를 교환하는 '계약'을 매개로 맺어지는 인적·사회적 관계로 파악한다. 기실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법적 주체'로서 근대적 개인이란 바로 이런 농노제적 토대 위에서 계약적 습속이 성숙해질 때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

문제는 조선후기 사회적 관계가 이런 의미의 농노제에 부합하는지 여부였다. 계약의 존재 여부를 판별하는 지표로 인적 예속관계를 매개로 한 토지지배와 그에 부대하는 노동력의 토지에 대한 '결박'을 꼽을 수 있다. 조선후기 그러한 형태의 토지지배는 관철되지 않았다. 동시대 중국의 명·청 왕조나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와 달리 조선왕조는 인신지배만 집착했을 뿐, 노동력을 토지에 결박시키거나 조용조(租庸調)로 대표되는 인신지배적인 조세제도를 폐지하지 않았다.

이영훈은 조선왕조의 사회성격을 '노예제'로 파악한다. 법적 주체로서 어떠한 권리도 보유하지 못한 채 계약적 습속 형성에 실패한 '노예들의 사회'가 바로 조선후기다. 계약을 매개로 하는 인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에 당연히 상호신뢰에 기초한 협력적 문화 형성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 시장경제의 발전이 저급한 수준에 머무는 것도, 오늘날 정치와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도 법치주의와 협력적 기업문화가 자리할 여지가 부재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한국형 시장경제'론의 핵심 논지다. 이런 노예제 특질을 보유한 한국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 묶일 수 있다면 그것은 타인에 대한 적대, 이웃에 대한 증오뿐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개념이 '반일종족주의'다.

이를 정교하게 비판하려면 뉴라이트 사관이 전제하는 개인·자유 등에 대한 이해를 전복해야 한다. 좌파는 어떠한 '자유'를 긍정하는가? '원자화된 개인'에 맞서 어떠한 성격의 개인을 형성하고자 하는가? 좌파가 지향해야 할 자유란 개인과 공동체가 형성하는 합일적 관계를 기준으로 정의해야 한다. 원자화된 개인들이 제멋대로 할 자유를 옹호하는 게 아니라 개인 의지와 공동체 의지가 합일적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를, 그 조건을 탐구해야 한다.

좌파의 근대이해가 흔들릴 때 뉴라이트 같은 전향좌파들이 나왔다. 그 치료법은 결국 보다 높은 수준의 근대이해를 제시하는 것일 테다. 그 과정에서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나올 것이다. 뉴라이트의 근대이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비판해야 아시아 멸시를 극복할 수 있다.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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