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성철 일본 히토츠바시대 부교수(경영학)

이 글은 <노동리뷰> 2024년 6월호 ‘일본 공채 제도의 현재와 미래’를 요약했다. <편집자>

매년 4월 초가 되면 일본의 대졸 공채 시즌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4월 말쯤 되면 4학년에 재학 중인 지도 학생들이 하나둘씩 취업 성공 소식을 전해 온다. 함께 기쁨을 나누는 동시에 속으로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놀라움을 억누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니 네가 어떻게 그런 대기업에 합격을?’ 학점은 2점대 중후반, 토익시험은 아예 본 적이 없고, 공모전과는 더더욱 거리를 두며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내는 데 전력을 다한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의 청년 노동시장과는 상반된 양상은 자연스럽게 일본의 공채(신졸일괄채용) 제도를 연구하는 동기가 됐다.

‘공채의 종말’ 담론

우리나라의 많은 연구자와 실무자들은 공채 제도의 퇴장을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흐름으로 바라본다. 공채는 고도경제성장기의 대표적인 인사관리 제도 중 하나였지만,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제는 제도적 합리성을 잃었다는 진단이다. 공채의 빈자리는 경력자 위주의 수시채용 제도가 채웠다. 국내 기업 사이에 공채에서 수시 채용으로의 전환은 이른바 ‘대세’가 됐다. 이러한 채용 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공채·수시 채용을 양극단에 두는 이분법적 사고와 깊은 관련이 있다. 모든 이분법적 사고가 그러하듯 공채·수시 채용의 이분법은 두 제도의 명과 암을 두루 조명하는 정교한 분석을 가로막고, 그 사이의 무수한 대안적 접근에 대한 상상력을 차단한다. 그 결과 공채 제도는 그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청산돼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채 제도가 여전히 제도적 합리성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맹목적인 수시채용 열풍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그러한 변화가 기업과 청년 구직자에게 갖는 함의를 성찰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일본 공채 제도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공채 제도는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었다. 교육계는 빠르면 3학년 2학기 때 학생의 취업처가 결정되는 일본식 공채 제도를 대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특히 대졸 신입사원 구인경쟁이 격화하면서 기업이 채용 프로세스를 계속 앞당기는 최근의 경향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재계는 노동생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멤버십 형’이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일본식 고용관계를 직무에 기반한 ‘잡(Job) 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핵심에는 수시채용 강화가 자리 잡고 있다. 끝으로 청년 구직자에게 있어 공채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해 왔다. 공채는 대졸과 고졸 사이의 격차, 공채에 성공한 정규직과 실패한 비정규 노동자 사이의 격차, 경기불황기 세대와 호황기 세대 사이의 격차를 낳는 대표적인 제도적 요인이었다. 특히 신졸을 경력자보다 우대하는 풍토는 20대 초반 공채에서 쓴잔을 마신 이들이 남은 생애에 그것을 만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회를 만들었다. 이러한 비판은 우리나라의 공채 제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렇다면 뚜렷한 한계와 비판에도 공채가 일본 청년 노동시장을 계속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노동시장 행위자들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원만하게’ 접합시켜 주기 때문이다. 기업은 공채를 통해 채용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다. 수시채용은 구체적인 직무 정의, 정밀한 평가 시스템, 성과기반 보상 시스템의 기반 위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만큼 채용 과정도 길고 현업에 있는 인력 투입도 빈번하다. 무엇보다 큰 비용을 투자해 채용한 인력이 이직할 가능성도 높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한 기준에 맞춰 대규모의 인원을 뽑는 공채는 가성비가 좋고 기업의 입맛에 맞게 인력을 육성·배치할 수도 있다. 구직자들에게는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채용 과정이 표준화돼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3학년 여름방학 무렵부터 취업준비를 시작하는데 거의 대부분 마이나비나 리쿠르트 같은 채용 에이전시에 소개된 ‘매뉴얼’에 따라서 ‘자기분석-기업분석-기업설명회 참석-이력서 쓰기’ 단계를 하나씩 거친다. 이 과정의 초점은 ‘능력’의 증명이 아닌 ‘자질’ 어필에 맞춰진다. 대학은 높은 취업률이라는 열매를 가져간다. 아울러 취업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교양 교육을 통한 학생들의 인성 및 자질 함양이라는 대학 본연의 미션에 충실할 수 있다. 끝으로 일본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청년 실업률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교집합 속에서 정부·재계·대학은 청년 노동시장의 큰 틀로써 공채 제도 유지라는 입장을 공유하고, 협상을 통해 ‘취업 협정’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왔다. 이는 경단련 소속 대기업의 채용 시작 시기, 공채 과정에 있어 인턴십의 제도화 같은 게임의 규칙을 미세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다른 제도와 마찬가지도 공채 역시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노동시장 행위자들을 묶어 내는 제도적 합리성이 있으므로 계속해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도적 합리성 이면에 있는 기업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기업이 인재를 키운다는 사회적 인식

대졸 공채와 평생 고용 등과 같은 일본식 고용제도의 주춧돌 중 적잖은 부분이 국제화와 사회·경제적 변화의 영향을 받아 예전의 무게감을 잃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구조조정에 의한 대량 해고는 더 이상 일본에서도 낯선 말이 아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전직과 이직도 증가 추세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람들 마음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인식이 있으니 바로 인재 육성에 있어서 기업의 역할이다. 애당초 일본 기업이 공채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때 묻지 않은 ‘하얀 옷’ 같은 인재를 수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하얀 옷을 기업이 원하는 색으로 물들일 수 있고, 그렇게 색이 든 인재는 조직의 미션과 문화를 내면화하며 ‘1인분을 하는’ 인재로 성장해 조직과 사회를 떠받친다는 인식. 이런 인식 속에서 색을 칠하는 행위인 조직 내 훈련과 경험 기회 제공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전략적 투자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장기 인턴십이나 해외연수 같은 특별한 ‘스펙’은 덧칠을 요하는 ‘얼룩’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일견 고도성장기 골동품 같은 이러한 인식은 최근 인재 확보 전쟁 속에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경력자 수시채용이 규범에 가까운 IT 산업의 스타트업, 그리고 파견업체조차 미숙련 인력을 뽑아 충분한 훈련을 제공함으로써 안정적 인력운용을 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채 종말 담론의 부상과 함께 일 경험을 통한 숙련 형성의 책임이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경향이 이미 뚜렷해졌다. 국가는 내일배움카드 등을 통해서 개인화된 숙련개발 과정을 지원하는 데 무게를 둔다. 미숙련 인력의 숙련 형성에 있어 기업의 역할은 공채에 대한 부정적 담론과 함께 증발해 버렸고, 채용의 초점은 청년 개개인이 고군분투를 통해 쌓아 온 능력치를 측정하고 줄 세우는 데 맞춰져 있다. 이것이 기업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 있어서 지속가능한 방식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거의 없었다. 공채 제도는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대상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이미 찍혔기 때문이다. 조직문화 개선 프로젝트를 위해 우리나라의 기업과 일을 할 때, 기업규모와 상관없이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이 함께 가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임원진에게 자주 듣게 된다. ‘선동열 방어율’ ‘박찬호 방어율’에 버금가는 학점에도 그분들의 성장 발판을 만들어 줬던 공채 제도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데서 출발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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