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전국 각지에서 2천명 가까이 되는 노동자·시민이 아리셀 희망버스를 타고 화성시청 앞으로 모였다. 그들은 아리셀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열망을, 그리고 유가족 곁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연대 정신을 보여줬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그저 모두 똑같은 한 명의 사람이었고, 다시는 죽음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진 이들이었다.
희망버스를 타고 방문한 아리셀 공장은 지난 6월24일 참사 이후 시간이 멈춘 듯 참혹했다. 화재로 까맣게 그을린 현장 위로 아리셀 간판이 보였고, 공장은 참사 순간과 대비되듯이 매우 고요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장은 마치 시간이 흐르는 것을 거부라도 하듯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자기 살길만을 찾고자 하는 아리셀 대표와 관계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제자리에 있는 것은 아리셀 공장만이 아니었다. 아리셀 참사의 문제 요인인 간접고용은 언제 어디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채 우리 주변에 여전히 남아 있다. 아리셀 대표와 관계자와 마찬가지로 간접고용의 책임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자기만 살려는 모습을 보일 뿐, 피해자에게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언제 멈춘 지 모르는 그 시간과 문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간접고용 구조와 반복되는 문제
간접고용을 하는 원청은 하청과의 계약을 통해 비용 절감과 책임 회피, 두 목적을 모두 달성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하청에 그 책임을 떠넘긴다. 이러한 문제는 최근 하청을 넘어 개별 계약을 하는 비정형 노동 형태로도 확대되고 있다. 이번 아리셀 참사도 간접고용에 불법파견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참사는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도 같은 유형의 문제가 있었다. 파리바게뜨 때도 그랬고, 대우조선 때도 그랬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문제임에도 여전히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를 뿐이다.
사람도 살다 보면 같은 문제를 몇 차례 되풀이할 수도 있고, 그래서 실수 몇 번은 봐주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간접고용으로 인해 계속해서 같은 문제가 반복해 일어나고 있음에도 해결하고자 고민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문제를 문제로 놔두니 원청에서는 계속해서 간접고용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같은날 광화문에서는
화성으로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모인 날 서울 광화문에서는 노조법 2·3조 거부권을 거부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노조법 개정의 핵심은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나타나고 문제로 남겨둔 간접고용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거부권이 반복적으로 행사되면서 노조법 개정의 핵심은 가려진 채 정치적 갈등으로 번지고 있을 뿐이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수많은 하청노동자는 노동기본권조차 보호받지 못한 채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고, 원청은 계속해서 간접고용을 통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아리셀 참사도 마찬가지였다.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 자체가 계속 막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언제 어디서 같은 문제가 터지더라도 새롭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언젠가 일어날 사고를 옆에 두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 고질적 간접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노조법 개정과 함께 원청에 대한 책임을 계속해서 물어야만 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kihghdns@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