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근로자가 아닌가요?”
법률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자신이 ‘근로자’라고 생각하고 일했지만 정작 법이 필요할 때는 근로자에게 보장된 법적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권익이 강화되고 근로관계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이 커지면서, 사업주들은 사업장 내 공정의 외주화 비율을 높이고, 소속 근로자들의 자리를 개인 사업소득자로 변경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 사업소득자는 사용종속관계에 있으면서도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령에 따른 근로자로서 보호받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소속된 헤어디자이너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다. 근로자 신분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것이다.
이처럼 근로자가 아닌 개업사업자로 계약하는 경우 사업주는 근로관계와 관련된 법령으로부터 책임을 부인할 수 있기에, 기존에 근로자를 채용하던 업무도 개인사업자로 교체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꼼수(?)에 법원이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06.12.07. 선고2004다29736 판결 등)면서 계약형식이 아닌 실질 관계에 따라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도록 어느 정도 제약을 뒀다.
그러나 법은 너무 멀리 있다.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던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재해자가 법률 상담을 하러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처음엔 요양병원에서 고용된 근로자였다. 그런데 요양병원측이 ‘외주 인력업체에 요양보호사 관리를 위임하겠다’고 해 그는 어쩔 수 없이 외주 인력업체와 개인 사업소득자로 새로 계약을 체결하고 근무하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크게 다친 상담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 신청을 했는데 ‘근로자가 아니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됐다. 요양병원의 지시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정해졌고 병원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병실 내 화장실 청소부터 야간 당직까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지만 공단은 사업주로부터 지휘·감독을 받는 관계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요양병원 역시 소속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 한마디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가 요양병원에 처음 입사했던 그때부터 사고를 당하는 순간까지 하는 일은 변한 게 없었지만, 어느새 사업주와 근로자라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업주와 사업주라는 대등한 신분이 된 것이다. 이처럼 억울한 신분 상승이 어디 있겠는가.
재해자에게 대법원 판례를 설명하며 근로복지공단과 요양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권했다. 상담을 마친 그는 시간과 비용 문제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전화를 줬다.
“변호사님 그냥 저 근로자 안 할래요, 너무 힘들 거 같아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재해자에게 법은 ‘사치’나 사막 속 신기루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한 푼 두 푼 빌려 최소한의 치료만 한 채 제대로 된 재활치료도 받지 못하고 다시 생활 전설에 뛰어들어야 했다.
청년노동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고 스스로 불꽃이 됐다. 불꽃은 노동환경을 급진적으로 진화하는 동력이 됐다. 그러자 사업주도 진화했다. 그들은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것에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사고를 전환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새로운 불꽃이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