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인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충북사무소)

다음달 시범사업을 앞둔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둘러싸고 업무 범위부터 최저임금 적용, 불법체류 우려 등 다양한 논쟁들이 나오고 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논쟁은 최근 산후관리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인한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의 처분을 떠오르게 한다.

바우처 사업은 국가가 복지대상자에게 직접 현금이나 서비스, 물품을 제공하는 대신, 정해진 이용처에서 서비스로 교환할 수 있는 이용권을 제공한다. 이 사업을 시행한 이후 서비스 제공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문제가 불거졌다. 대부분 소송을 제기한 후에야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

바우처 사업의 구조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정부 바우처 지원사업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제공기관·사업주)은 관련법이 요구하는 소정의 인정 물적 등록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시설·장비·인력 등 수단을 갖추지 못한 개인은 개인사업자로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그리고 제공기관은 관련 부처 지침에 따라 사업을 운영하면서, 서비스에 필요한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을 채용하고, 해당 인력정보를 전자바우처 시스템에 등록한 후 주기적 교육, 근로기준법 등에 따른 노무관리·4대보험 가입·퇴직급여 관리를 해야 한다.

한편 정부 바우처 사업을 위해 지자체 등에 등록된 제공기관은 바우처뿐만 아니라, 비바우처(정부지원이 아닌 이용자 개인이 비용부담)사업도 함께 영위할 수 있는데, 바우처 사업을 위해 채용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비바우처 사업에 그대로 활용한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공기관(사업주)에 소속된 산후관리사들 역시 사업주와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후 바우처 및 비바우처 산후관리 서비스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사업주는 바우처 서비스를 수행할 때만 근로자이고, 비바우처의 경우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바우처나 비바우처 모두 제공기관이 이용자인 산모와 계약을 하고, 산후관리사로 하여금 이용자인 산모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데, 서비스를 수행하는 시간과 장소는 기본적으로 산모가 서비스제공 요청을 접수하는 제공기관들에 의해 정해진다. 산후관리사는 제공기관이 알려주는 시간과 장소에서 서비스 수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나, 바우처 또는 비바우처 사업을 선택할 수 없다. 거절시 임금이 저하된다. 거절이 몇 차례 이어지면 계약해지가 돼 실질적으로 거절은 곤란하다. 수락한 이후 산후관리사는 다른 산모로 교체를 요구할 수 없는 반면, 산모가 민원을 제기할 경우 제공기관에 의해 산후관리사의 교체는 쉽게 이뤄진다.

이용서비스 금액에 대한 결정권한도 없다. 정부가 정한 이용료 또는 사업주와 산모가 정한 비바우처 이용료에서 제공기관이 일정 금액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월급의 형태로, 또는 산모로부터 직접 받도록 지시하면 그에 따라 급여를 받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실질에 있어 사업주인 제공기관과 산후관리사는 사용종속적 관계로 볼 근거가 충분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해야 하지만 청주지청은 바우처 사업을 수행한 경우만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심지어 청주지청은 바우처 사업만 운 좋게 수행해 그 기간이 1년이 넘은 산후관리사에게 퇴직금 지급을 거부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업주를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하기도 했다.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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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이유로 근로자성이 부인됐는지, 어떤 이유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가 없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리지도 않고, 사건이 종결됐다고 통지할 뿐이다.

노동관계법 적용대상은 불변의 기준이 아니라 경제·사회적 상황에 따라 바뀐다. 하지만 우리 법과 제도는 고용형태와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은 오히려 판단요건 중 일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너무도 쉽게 근로자성의 부인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결국 산후관리사의 근로자성 판단은 법원의 몫으로 남겨졌다. 법적 다툼 과정에서 사업주의 근로시간 축소로 인한 임금 저하와 계약종료에 노출되는 산후관리사의 고통과 긴 법정싸움 끝에 받게 될 퇴직금을 비교해 본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한 산후관리사 개인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도록 산후관리사 근로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커다란 목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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