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대법원은 피고 한국지엠 주식회사에 대해 이미 2013·2014년에 각 형사판결과 민사판결로 불법파견을 확인한 바 있다. 한국지엠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죄는 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1도34 판결로, 한국지엠을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 확인 청구는 대법원 2016. 6. 10. 선고 2016다10254 판결로 확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지엠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을 정규직 채용을 거부했고, 금속노조는 조합원들을 모집해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위 소송 외에 비조합원들이 진행하는 집단소송도 진행됐다. 위 소송 중 일부가 지난 7월25일 선고됐는데, 대상 판결은 비조합원 진행 사건이다.
2. 쟁점의 정리
근로자지위 확인 청구의 소송상 진행과 관련해 실무적으로는 근로자지위 확인 청구와 임금 청구를 분리해 진행하는 경우와 병합해 진행하는 경우로 구분된다. 전자의 방식은 쟁점을 단순화해 근로자지위 확인 청구에 대한 법원 판단을 빠르게 받고자 하는 목적이다. 물론 후자의 방식도 후속 기간에 대해 별도로 임금청구를 해야 한다. 대상 판결은 후자의 방식을 택했다.
임금 청구의 구체적인 청구원인은 고용간주는 임금 청구, 고용의무는 임금 상당의 손해배상이다. 청구기간은 고용간주일 또는 고용의무 발생일부터 정규직 채용 전날까지 기간이다. 실무적으로는 소송이 장기화되기 때문에 기간을 구분해서 청구한다. 청구금액은 파견근로자가 정규직으로 근무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에서 사내하청업체에서 받은 임금을 공제해 산정한다. 문제는 공제 범위에 파견근로자가 사내하청업체에서 받은 퇴직금을 공제할 것인가, 공제한다면 어느 범위까지 공제할 것인가다.
이에 대한 파견근로자 입장은 ①원칙적으로 사내하청업체 퇴직금을 공제하지 않아야 하고, ②공제하더라도 위 청구기간에 대응하는 부분만 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내하청업체에서 20년을 근무했어도, 위 청구기간과 중복되는 기간인 10년에 해당하는 퇴직금만 비례적으로 공제하는 방식이다. 다만 파견근로자측도 ①의 방식으로 다툴 경우 소송이 장기화될 것을 염려해 ②의 방식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사용자 측은 일관되게 퇴직금 전액을 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급심 판결의 경향은 ②의 입장이다.
한국지엠의 입장은 파견근로자들이 고용간주일 또는 고용의무 발생일 이후 사내하청업체에서 지급받은 퇴직금이 있는 경우 손익공제 법리에 의해 전액 공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심 판결은 파견근로자가 사내하청업체로부터 퇴직금을 받은 경우, 그 퇴직금 중 사용사업주의 임금지급의 대상으로 되는 기간에 시기적으로 대응하는 금액은 중간수입으로서 상환 내지 공제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원심 판결에 대해 피고 한국지엠만 상고했다. 대상판결은 상고를 기각하면서 위 퇴직금 공제 범위에 대해 사용사업주가 지급할 임금 등에서 파견사업주가 지급한 퇴직금을 공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원고 파견근로자들은 상고하지 않고 피고만 상고했기 때문에 원심판결을 피고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수는 없어 원심판결은 그대로 유지됐다. 대상 판결의 판시는 고용간주 원고들의 임금 차액 산정에 대한 것인데, 고용의무 대상자의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3. 대상판결의 요지
구 파견법(2006년 12월21일 법률 제807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의해 직접고용 간주의 효과가 발생했으나 사용사업주가 현실적으로 직접고용을 하지 않아 파견근로자가 파견사업주 소속으로 계속 사용사업주에게 근로를 제공한 경우,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에 대해 부담하는 임금 등 지급의무와 파견사업주가 파견근로자에 대해 부담하는 임금 등 지급의무는 부진정연대채무의 관계에 있다. 이 경우 파견사업주가 지급한 임금 등의 세부 항목이 사용사업주가 지급해야 하는 세부항목 각각에 대응해 지급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진정연대채무자인 파견사업주가 파견근로자에게 변제한 임금 등은 그 세부 항목을 가리지 않고 그 전부가 사용사업주가 지급해야 할 금액에서 공제하고, 동일한 세부 항목이나 동종의 항목별로 대응해 변제가 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24. 3. 12. 선고 2019다223303·223310 판결 등 참조). 그러나 퇴직금은 후불 임금으로서의 성격 이외에도 사회보장적 급여로서의 성격과 공로보상으로서의 성격을 아울러 가지고 발생 시점과 산정 방법도 임금과 다르므로 사용사업주의 임금 등 지급의무와 파견사업주의 퇴직금 지급의무가 부진정연대채무의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고, 형평의 원칙을 근거로도 사용사업주가 지급할 임금 등에서 파견사업주가 지급한 퇴직금을 공제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 다만 파견사업주가 지급한 퇴직금은 향후 파견근로자가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퇴직금을 구하는 경우에 공제할 수 있을 뿐이다.
4. 대상판결의 의미
이번 판결은 퇴직금의 사회보장적 급여 성격과 공로보상 성격을 고려할 때, 사용사업주가 지급할 임금 등에서 파견사업주가 지급한 퇴직금을 공제할 수 없다는 점을 밝혔으며, 특히 사용자들이 주장하는 ‘형평의 원칙’을 근거로도 공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불법파견 사건에서 파견근로자측은 ‘퇴직금은 퇴직으로 인해 비로소 발생한 채권으로,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들의 근로를 직접 수령하지 않고 협력업체를 통해서 수령해 퇴직금 채권이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손익공제의 법리에 따른 공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사용사업주는 ‘손익상계의 법리에 비춰 볼 때, 파견근로자들이 청구하는 임금 차액과 사내하청업체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면서 수령한 퇴직금은 서로 상당인과관계에 있다’는 입장이었다. 위 두 주장 모두 후불 임금으로서의 성격을 전제로 주장을 개진한 것이다. 대상판결은 사회보장 급여 성격과 공로보상의 성격을 근거로 퇴직금 공제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또한 대상판결은 ‘발생 시점과 산정 방법도 임금과 다르므로 사용사업주의 임금 등 지급의무와 파견사업주의 퇴직금 지급의무가 부진정연대채무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는데, 퇴직금 중 사용사업주의 임금지급의 대상으로 되는 기간에 시기적으로 대응하는 금액은 중간수입으로서 상환 내지 공제의 대상이 된다고 본 하급심 판결 경향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특히 대상판결은 형평의 원칙을 근거로도 사용사업주가 지급할 임금 등에서 파견사업주가 지급한 퇴직금을 공제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사용사업주는 종래 ‘퇴직금을 손익상계과정에서 반영하지 않는다면, 근로자는 사용사업주와의 근로계약 기간 동안 동 퇴직금에 상당하는 금액만큼 더 나은 상태에 놓인다’는 주장해 왔는데, 대상판결은 ‘파견사업주가 지급한 퇴직금은 향후 파견근로자가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퇴직금을 구하는 경우에 공제할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해 이러한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불법파견에 따른 임금청구 사건에서 파견근로자측은 퇴직금의 비례적 공제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 대상판결 판시에 따라 퇴직금 공제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청구취지를 변경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