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차 가사노동자 한지숙(71·가명)씨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고객 집에서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니 쌩쌩 돌아가던 에어컨이 소리 없이 조용했다. 닫혀 있던 창문은 열려 있었다. 집 주인이 외출을 하면서 한씨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에어컨을 끄고 나간 것이다.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란 서러운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어느새 한씨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 선풍기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에어컨 리모컨도 자취를 감췄다. 한씨는 당시 일을 떠올리며 “속이 너무 상했다”며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상황에서 사람이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 말 없이 에어컨을 꺼놓고 갈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서울시가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서울을 만들겠다’며 서울형 가사서비스 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가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서비스 이용고객의 갑질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씨도 이 사업에 참여해 일하고 있다. 서울시는 고객(서울 시민)에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고객 말 한마디면 교체당해
불이익 두려운 업체, 문제제기 못해
서울형 가사서비스는 중위소득 150% 이하 임산부·맞벌이·다자녀 가정에 가사부담을 덜기 위해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가구당 가사서비스 10회가 제공되는데, 가사인증기관(위탁업체)이 고용한 가사노동자가 가정에 방문해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서울시는 올해 1만가구에 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업 규모가 전년도(6천 가구)보다 67% 확대됐다.
그런데 고객의 갑질, 열악한 근무환경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5년 차 가사노동자 김정숙(65·가명)씨도 한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집주인이 덥지 않다며 냉방기를 켜주지 않은 것이다. 김씨는 “자신은 가만히 앉아 있으니 안 덥지만, 저희는 일을 하며 왔다 갔다 하니 덥다”며 “어떨 때는 땀에 흠뻑 젖어 옷을 짜면 물이 나올 정도라 수건을 가지고 닦아 가면서 해도 땀이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고객이 얼음물 한 컵을 주는 것도 없다”며 “고객이 자기 컵 쓰는 것을 싫어하니, 물 일체를 갖고 다니라고 교육받는다”고 덧붙였다.
한지숙씨는 “(고객은) 서비스가 마음이 안 드는 게 있으면 사람을 교체해 달라고 한다”며 “고객과 우리(가사관리사)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고객이) 나쁜 쪽으로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 인격은 없구나 싶다”고 한숨 쉬었다. 한씨는 설거지한 그릇에 고춧가루가 묻어 있었다는 고객 민원에 소명 한번 해보지 못하고 일을 관둬야 했다. 그는 “서울시에서도 고객 민원이 오면 우리 사무실을 야단친다”고 덧붙였다.
가사노동자는 업체에 고충을 호소하지만, 업체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을 제재하기 쉽지 않다. 가정 내 고용의 특성상 당시 정확한 상황은 고객과 가사노동자만 알 수 있고, 고객이 서비스 질을 문제 삼으면 시시비비를 따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객이 서울시에 민원을 넣으면 업체에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냉방기 틀어 달라” 서울시는 권고만
비닐장갑 주며 “변기 닦아라” 해도 거부 못 해
업체들도 고충을 토로했다. ㄱ업체 관계자는 “서울형 가사서비스 사업의 기준이 시민들 기준에 맞춰 있다 보니 갑질을 하면 가사관리사는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서울시도 에어컨 등 가사관리사 근무환경과 관련한 내용을 안내하지만 말뿐”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서울형 가사서비스 이용에티켓 중 하나로 “7~8월 폭염 속 가정 내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사관리사님께 냉방기 사용을 권장 부탁드린다”고 안내하고 있다.
서울시가 만든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기관 간 체결 약정서에는 제공 서비스와 제외 서비스, 이용자 준비사항 등이 명시돼 있고 “가사관리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경우” 등은 서비스 중단 및 해지를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가사노동자 안전·건강에 직결되는 냉난방기 관련 규정은 없다. 제외서비스를 고객이 요구할 때 서비스를 중단·해지할 수 있는지, ‘무리한 요구와 부당한 대우’가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서울시 눈치를 봐야 하니 명백한 고객 잘못도 눈감기 일쑤다.
ㄴ업체 관계자는 “서비스 거부권은 사실상 업체에 없다”며 “고객이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관리사가 여섯 번 바뀐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와 고객 간 약정서에는 커튼 세탁 및 설치 업무는 약정서상 가사관리사의 업무가 아니라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고객이 요구해 가사노동자가 따랐고, 커튼 장식이 손상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고객의 변상 요구에 업체는 배상을 해 줘야 했다.
ㄱ업체 관계자는 “청소도구도 없이 수세미와 비닐장갑을 주고 변기를 닦으라는 고객의 요구도 있었다”며 “4시간 중 30분은 휴게시간인데 가사관리사를 따라다니면서 계속 일을 시키거나, 도저히 시간 내 끝낼 수 없는 집 청소를 요구하고 일을 다 못했다며 서울시에 항의하는 집도 있다”고 전했다.
“4시간 서비스 이용시간 중 1시간당 10분의 휴게시간” “효율적인 가사서비스 제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청소 도구를 미리 준비” 모두 서울시가 고객 에티켓으로 안내하는 사항이다.
“사업 시행 주체, 서울시가 분쟁 조정해야”
서울시 “업체-이용자 간 약정, 우리는 비용만 지원”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자가 이용자한테 인격적인 모독, 무리한 요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서비스를 중단하긴 쉽지 않다”며 “이용자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일방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분쟁해결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는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알아서 하도록 돼 있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조 연구위원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이용이 중단되면 수익이 감소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민원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업 시행 주체인 서울시가 분쟁해결절차위원회 등을 만들어 분쟁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분쟁 조정 사례가 쌓이면 일종의 판례처럼 작용해 민간 가사서비스 영역에도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형 가사서비스는 서비스 제공기관과 이용자 간 계약에 의해서 이뤄지고 서울시는 실비 일부를 지원한다”며 “서울시와 이용자 간 약정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서비스 중단·해지에 관련해서도 서비스 제공기관과 이용자 간 약정서에 있다”며 “분쟁이 있으면 민법으로 처리하고, 안 되면 소비자기본법도 있고 법에 의해서 하는 것이지 서울시가 개인 분쟁에 개입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