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섭(55·사진) 전 고용노동부 차관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되자 노사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16년 만에 관료 출신이 경사노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제2의 노동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노동계 우려가 나온다. 반면 재계는 성공적인 대화를 통해 법·제도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했다.
노동부 관료 내 신망 두터워
“노사협력 분야 경험 부족” 평가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에 권기섭 전 노동부 차관을 내정했다. 다음주 초 정식 위촉되면 국회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식을 거쳐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행정고시 36회로 공직에 입문한 권기섭 내정자는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에는 대통령 고용노동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했다. 노동부에서는 근로감독정책단장‧고용정책실장과 노동정책실장 등을 역임하며 주요 부서 두루 거쳤다.
2021년 7월 신설한 노동부 산압안전보건본부 초대 본부장을 맡아 산업안전보건 행정 분야에서 노동부 차원의 전문성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 첫 노동부 차관으로 임명되며 정권 교체 뒤에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13개월가량 차관으로 일하다 지난해 6월 물러났다. 지난 6월에는 비철금속 제련회사 고려아연이 구성한 2기 안전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노동부 내부에서는 일찍부터 선후배들로부터 ‘차세대 에이스’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일벌레로도 불리며 내부 신망이 두텁다. 노사협력 분야 경험이 다소 부족해 경사노위원장으로서 약점이라는 외부 시각도 있다.
대통령실은 “30년간 노동부에서 근무하며 노동·고용·산업안전 분야 3개 정책실장을 모두 거쳐 윤석열 정부 초대 차관까지 역임한 정통 관료”라며 “고용·노동 분야의 풍부한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경제사회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 ‘제2 노동부’ 우려
경총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 기대”
노동계는 권기섭 경사노위원장 위촉을 다소 경계하는 모습이다. 사회적 대화 기구 수장에 노동부 관료 출신이 위촉된 사례는 2007년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노사정위원장을 맡았던 김성중 전 노동부 차관 이후 16년 만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경사노위 위원장에 현 정부 노동부 차관 출신을 임명한 것은 경사노위를 정부 노동정책을 밀어붙이는 제2의 노동부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며 “어렵사리 재개된 사회적 대화가 또다시 파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경사노위는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위원회, 일·생활 균형위원회,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를 구성해 5월부터 본격 논의에 나섰다. 각 위원회별 회의가 3~5차까지 진행된 상태다. 노사가 입장을 설명하는 형태로 논의가 진행 중이며, 주요 쟁점 사안이 좁혀지지 않았다.
정부는 주요 노동개혁 과제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추진한다는 계획인데 여전히 ‘답정너’ 행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사회적 대화가 진행 중인 계속고용 제도개선에 대해 지난달 25일 “생산성과 괴리된 강한 연공급 임금체계, 전보나 전적과 같은 배치전환의 어려움 등이 정년퇴직 및 계속고용 확산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며 “노사가 자율적으로 계속고용을 확산하려면 무엇보다 임금체계 개편, 배치전환, 취업규칙 작성·변경 절차 등 근로조건 조정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규정해 기업 내 기능적 유연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이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불편해하고 있다.
한국경총은 “권기섭 내정자는 고용·노동 분야의 풍부한 정책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정통 관료 출신으로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 법·제도 개선과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에 기여해 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정남·강예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