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화재참사가 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진상규명도 사측과의 공식 교섭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사측은 유족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아리셀 대표 등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처벌불원서를 들이밀며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족들은 “외국인이라고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것이냐”며 절규하고 있다. 이미 널리 보도된 바와 같이 리튬 배터리 제조공장 아리셀 화재참사의 23명 사망자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다. 대형 산업재해 화재참사로 기록되는 2008년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에서도 사망자 40명 중에 13명의 이주노동자가 포함돼 있었고 2020년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참사 사망자 중에도 이주노동자가 포함돼 있다. 화재의 직접적 원인은 사고마다 다를지 몰라도 산업재해 참사에서 이주노동자는 특히 더 위험하다는 것이 안타까운 대형참사의 반복 속에 드러났다.
고용노동부에서 2023년 산재 사고사망 현황을 발표하면서 사고사망만인율이 만 명당 0.39명으로 최초로 0.3대에 진입했다며 그간 정부 노력의 성과라고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812명의 사고사망자 중 외국인은 85명으로 전체의 10.5%를 차지했다. 2001년에는 전체 사고사망자의 4.2%가 외국인이었던 것에서 꾸준히 증가해 온 수치다.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이주노동자수는 산재통계에 밝히고 있지 않아 내국인의 산재사고 사망률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다만 전체 취업자 중 외국인 비율은 합법적 체류자 기준 3% 정도임을 감안할 때 외국인이 사고사망의 10.5%를 차지하는 것은 무척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의 2023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의하면 등록된 취업 외국인의 70%가량이 30명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취업하고 있고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5명 미만 사업장에 취업한 경우도 20%를 넘었다. 또한 외국인 취업자의 60% 정도가 광업·제조업과 건설업에 취업하고 있어 산업재해 발생률이 높은 곳에 주로 취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산재발생이 높은 작업환경인데 언어장벽으로 의사소통마저 어려운 이주노동자라면 그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안전문제에 관한 한 자신의 작업환경과 위험요인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아는 것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는 산업재해의 고위험군이고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취약 노동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전체적인 노동정책·산업안전보건정책을 진전시켜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각별히 애써야 마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오히려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테면 이주노동자의 노동안전보건 실태를 진단하는 것조차 어렵다. 국가승인통계인 ‘산업재해 현황’에 외국인 여부 정보가 빠져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재해율도 정확히 알 수 없고 성별·업종 등 다른 요인에 따른 통계수치도 알 수가 없다. 산업재해 노동자의 요양 종료 이후를 추적하는 산재보험 패널조사에서도 이주노동자는 빠져 있다. 우리나라 취업자의 노동환경과 조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조사인 근로환경실태조사에서는 2020년 조사 기준 타국적 노동자가 전체 조사 참여자의 0.7%에 불과했다. 실제 구성비에 비해 너무나 낮은 수치이고 표본의 부족으로 안정적인 분석 결과를 내기 어렵다. 그나마도 한국어 소통이 잘 되는 경우만 조사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조사는 한국 취업자를 대표하는 데이터로 만들기 위해 조사표본 추출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조사인데도 이주노동자까지는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에 대한 통제권을 높여야 한다. 노동환경과 잠재적인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고, 안전과 건강상 위험이 있을 때는 노동을 거부할 수도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권리를 확보하기가 더욱 어렵다. 고용허가제로 인해 사업장 변경이 극히 제한돼 있기에 사업주에 대한 종속성은 내국인 노동자보다 훨씬 더 높다. 결국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안전보건의 위험을 회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인력난 해소가 필요하다며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를 급속한 속도로 늘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제대로 된 이주노동자 노동정책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