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홍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돌꽃)

지난해 10월, 인천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던 사무실 건물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시설장이자 법인대표의 폭언, 협박 등 직장내 괴롭힘이 원인이었다. 노무사가 된 이후 괴롭힘 예방 교육에서 사례로 언급하거나 뉴스 기사로 접했던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문제가, 내가 몸담은 노동조합에 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고인의 이름은 김경현이다. 2006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활동지원제도화 투쟁에 함께 했었고, 민주노총 정보경제서비스연맹 다같이유니온 소속 조합원이었다. 인천지역에서 50여개 시민사회·장애인·노동·사회복지단체들이 모여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100여 일간 1인시위와 시청 앞 농성, 집회 등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싸움을 진행했다.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 가해자의 행위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돼 과태료가 부과됐고, 법인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지난주, 피해자의 사망은 직장내 괴롭힘이 원인이 돼 발생한 업무상 재해임이 인정되면서 긴 싸움은 일단락됐다. 이제 인천시를 비롯한 유관단체들과 함께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과정을 남겨둔 셈이다.

우연일까. 지난주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된 지 5년이 됐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 발표에 의하면 올해 2분기 현재 응답자 60%는 최초 법이 시행된 이후와 비교해 직장내 괴롭힘이 줄어들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일터에서 괴롭힘을 호소하는 이들은 적지 않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 직장내 갑질 문제로 상담 요청이 들어온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괴롭힘으로 인정하려면 행위의 지속성, 반복성을 요건으로 추가해야 한다며 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괴롭힘 금지법의 입법 취지와 국제노동기준에도 배치될 뿐만 아니라, 많은 피해 노동자들이 객관적인 증거를 구하지 못해 신고조차 못하는 현실에 역행한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라는 점을 입증하려면 문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고인의 산재가 최종 승인됐다는 연락을 배우자에게 드렸을 때, 기뻐할 줄 알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오히려 정말 끝난 게 맞냐는 지친 목소리의 물음이었다. 산재신청 이후 승인까지 6개월 이상 걸렸고, 이에 필요한 다양한 서류들과 복잡한 절차들,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는 아픈 기억들에 많이 힘들어했다. 산재 신청 과정의 까다로운 절차와 장기화, 그 과정에서 재해자와 유가족의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난주 TV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고 한다. 상사의 폭언과 업무배제 같은 괴롭힘으로 피해자가 분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의 증언들이 상반되고 증거가 없어 감사팀장은 조사를 미루려 한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의 고통이 직장에서 어떻게 외면되는지, 조직의 이익을 우선해 별것 아닌 걸로 치부되는 과정이 잘 드러난다.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현실을 너무나도 잘 담고 있어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김경현 조합원이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너무 지치고 힘들고 피곤하네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난 지 9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 글을 빌어 고인에게 너무 오래 걸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편하게 눈을 감고 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전히 숨죽여 참고 있는 괴롭힘 피해자들과 사각지대에 놓여 보호조차 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도록, 작은 힘 보태며 함께하겠다 다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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