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소송 포기, 자회사 전적하라” 지난주 <매일노동뉴스>에서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서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2024년 7월26일자 매일노동뉴스). 이 나라에서 기자회견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게 일상화된 지 오래다. 언론재벌, 재벌언론 등이 지배하는 이 나라의 언론시장에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언론에 관심을 끌어 기사 한 줄이라도 내보겠다고 이 나라 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발버둥친다. 비정규직이나 중소사업장 노동자들만 아니라,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와 노동조합조차도 이제 기자회견은 당연한 선전홍보사업이 돼버렸으니, 요즘은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개최해서 뭐라 했다고 해서 특별한 관심을 끌 뉴스는 아닌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나는 기자회견 뉴스라도 제목만 보고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사는 그렇게 넘길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수도 없이 떠들어왔던 주제였기 때문이다.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한 불법파견 소송을 취하·포기하고, 원청의 자회사로 전적을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압박하자 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열어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는 소식이었다.

2. ‘불법파견 소송 이긴 노동자들에게 한전 또 소취하 압박’이라는 제목에 ‘노사전협의회 열어 “소송 포기, 자회사 전적하라” … 거부 노동자 200명, 다음달 14일 일자리 잃어’라는 소제목이 붙은 기사였다. 제목만 보고도 어떤 소식인지 알 수 있었다. 용역·도급계약을 체결한 업체 소속으로 한전에서 일해온 노동자들이 원청 한전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 즉 파견법 위반한 불법파견을 주장해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하급심에서 승소 판결까지 받았는데, 계속해서 소송을 취하하고, 한전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해서 일할 것을 한전 노사전협의회를 통해 요구하면서 압박하고 있다고 충분히 읽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불법파견 소송을 포기하고 자회사로 전적하라고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걸 나는 지난 20여년 동안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좀 다른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르지 않은 것인지를 궁금해 하면서 나는 기사의 본문을 읽어 보았다.

“30여년 동안 섬에서 전기를 만들어 온 도서지역 발전노동자들은 지난해 6월 한전을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에서 승소했”고, “이들은 1996년부터 한전과 수의계약 방식으로 도서지역 전력발전 사업을 수행해 온 ㈜JBC라는 하청업체에 소속돼 있었다”, “1월에는 한전이 소송에 이긴 JBC 노동자들에게 소송을 포기하고 자회사인 한전MCS로 전적하라고 통보하기도 했”고, “한전이 JBC와 수의계약을 유지하지 않고 경쟁입찰을 진행하겠다고 하면서 소송 취하를 전제로 자회사 전적을 압박한 것이”며, “수의계약을 따내지 못한 JBC가 영업을 지속할 가능성이 낮아 노동자들은 소송을 포기하고 자회사로 가거나 일자리를 잃는 것 중 선택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노사전협의회를 열어 “소송 포기, 자회사 전적하라”며 압박을 계속하고 있어,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3. 오늘 이 나라에서 불법파견 소송은 원청과 용역·도급·위탁 등의 계약을 체결한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원청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것들이다. 업체가 아니라 원청의 사업을 위해서 원청에 자신들이 사용되기에 파견근로라고 주장해서 파견법에 따라 원청의 근로자로 고용돼야 한다고 소송하는 것이다. 벌써 20여년 전부터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해왔던 소송이고, 그 판단기준 등에 관해서 판례 법리가 형성돼 있다. 파견법은 용역·도급·위탁업체 소속 노동자가 원청 사업주를 위해서 사용된다면 불법파견, 즉 파견법을 위반한 파견근로로서 원청 사업주에게 직접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실제로 업체가 아니라 원청에 사용되고 있다면 파견법에 따라 원청의 근로자로 고용돼야 하는 것이고, 만약 원청의 근로자로 고용하지 않으면, 업체 소속 노동자는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직접 고용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파견 법리에 따라,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한전을 위해서 사용했는데도, 한전의 근로자로 고용하지 않으니 한전을 상대로 직접 고용하라고 소송을 했던 것인데, 이 소송을 취하시키고, 한전의 자회사 소속 근로자로 전환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법은 노동자를 압박하지 않는다. 파견법은 원청 사업주에게 파견법 위반의 파견 근로자인 하청업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압박하는 것이지, 결코 하청업체 노동자를 압박하지 않는다. 이상하다. 이 나라에서는 20여년 전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소송을 시작했을 때부터 오늘까지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부제소합의, 소 취하 등으로 소송 포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파견법상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가.

4. 당연히 원청 사업주다. 이 나라에서 불법파견 소송을 포기하고, 계속해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 일하거나 자회사 소속 노동자로 전직하도록 압박해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파견법상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자, 그 본체가 원청 사업주라는 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하청업체 사용자가 압박한다고 해도 그것이 원청 사업주의 뜻에 따른 것이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소송 포기하라고 하는 자는 하청업체의 소장 등 관리자, 사장 등이라도 원청 사업주의 의지로 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도 하지만, 대체로 하청업체를 통해서 원청 사업주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소송 포기하도록 압박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원청 사업주가 강요의 본체이고, 하청업체 사용자는 소송 포기를 직접 종용하는 행동대장인 것인데, 최근 들어 부쩍 나서는 자가 있다. 과거에는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감히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원청 근로자인 정규직을 대표하는 노동조합, 노사협의회 등이다.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의 소송 포기 등의 압박에 합세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활동하는 노동자의 단결체인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해서 나서지 못할 망정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포기를 압박하는 사용자에 합세하리라고는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에서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제는 익숙해서인지 비난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이 간간이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에 기자회견한 한전 하청업체 사건을 보면, 한전 노사전협의회가 소송 포기, 자회사 전적하라고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도 한전 정규직의 노동조합이 함께하고 있다. 단순히 협의기구에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까지 하는데 이것이 노동조합으로 당당할 수 있는 일인지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회사 방식을 적극 채택했다. 이때 이 나라의 정규직 노동조합이 그 협의기구에 참여하게 됐던 것인데, 이로 인해 과거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일반화됐다. 정규직의 성과급 등 보수와 고용안정 등을 위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은 어렵다는 목소리를 내는 정규직 노동조합이 많았고, 오늘은 한전의 노사전협의회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소송 포기와 자회사 전적을 압박하고 있는 사태에 이르고 있다.

5. 가끔 나는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정규직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합세해서 사용자를 압박했더라면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물론 현대자동차, 기아 등에서 비정규직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있기는 했었다. 비정규직노조와 정규직 전환 방식, 노조 조직체계 등에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에 따르겠다는 의지로 얼마든지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비정규직에게 권리 포기를 강요하는 노동조합의 모습은 이 나라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일시적인 일부의 일탈로 기록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노동조합의 의의를 새기고, 비정규직과 함께 사용자를 압박하는 노동조합, 노동운동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그래서 내 상상이 더는 상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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