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1990년대 초까지 부산은 인구 400만명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였다.

마창과 울산 공업단지를 배후라서 관련 산업도 활발했다. 신발제조업은 전 세계 최대였다. 당시 부산의 신발업체 직접 종사자만 15만명이었다. 프로스펙스를 만들던 국제상사는 7만명, 삼화고무는 4만명을 고용했다. 대양고무, 진양고무, 태화고무 등도 1만명 이상 고용했다. 1천명 이상을 고용하는 하청회사도 즐비했다.

지금 부산은 65살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2.5%로 7대 특별·광역시 가운데 으뜸이다. 심각한 건 노인 인구 증가율도 전국 최고다. 더 심각한 건 10년간 청년 10만명이 빠져나갔다. 부산 사람들은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고 자학한다.

‘독거노인 많은 부산, 1인 가구 취업률 전국 꼴찌’(부산일보 6월19일 8면)라는 기사에서 보듯 혼자 사는 부산 노인들이 취업도 못 한 채 늙어간다. 부산은 독거노인 비율이 가장 높은데, 그마저도 취업 못 한 노인이 수두룩하다.

이런데도 지난해 부산시는 2030 세계박람회 유치에 ‘올인’ 했다. 나는 부산시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박람회 유치하면 시민의 삶에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지”를 물었다.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언론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유치’만 외쳤다.

유명 배우가 “부산이 유치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포스터를 볼 때마다 ‘유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포스터는 욕을 바가지로 듣고 “부산에 유치해”로 바꿨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반성 없는 지방정부와 언론은 바로 다음날 거리에 덕지덕지 붙인 현수막 철거에 급급했다.

반년이 지났지만 부산시 헛발질은 여전하다. 느닷없이 부산을 ‘커피 도시’로 만든다며 시장이 카메라 앞에서 손수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가수를 홍보대사로 내세워 ‘커피도시 부산’ 홍보에 발 벗고 나섰다.(국제신문 7월9일 17면) 부산시는 “단순히 커피전문점과 종사자를 늘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광코스 개발과 브랜드화 등을 통해 ‘글로벌 커피도시’를 조성한다”(국제신문 6월30일)며 지역 커피산업 육성에 340억원을 투입하겠단다.

부산시는 ‘커피산업발전협의회’를 만들어 ‘1차 부산시 커피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아무리 지역경제 활성화가 급해도 이건 아니다. 커피 1그램도 생산하지 못하는 부산이 오롯이 소비만 보고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인다.

부산엔 ‘워케이션’이란 말도 유행한다.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넘어 일과 관광을 함께하는 새 근무 방식을 말한다. 코로나 때 재택근무가 늘자 빈 집이 넘쳐나는 부산에 그들을 유치해 내수 활성화를 꾀한다는 취지다.

부산시는 인구가 줄어 붕괴 위기인 동구의 한 호텔에 부산형 워케이션 거점센터를 세운 뒤 1년여 누적 가입자가 4천400여명을 기록했다고 홍보했다. 부산시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크다고 했다. 언론은 “부산형 워케이션 인기몰이…글로벌 참가자도 ‘방 있나요?’”(국제신문 6월18일 10면 머리기사)라는 기사로 화답했다.

1년에 청년이 1만명씩 빠져나가는 부산에서 정주형 일자리 대신 이런 편법으로 청년을 끌어오고 소비를 유도하는 게 언제까지 가능할까. 차라리 엑스포 유치 실패 직후인 지난해 12월 18일 조선일보가 제시한 ‘실버 도시 부산’이 더 낫다. 조선일보는 이날 ‘엑스포 유치 실패보다 치명적인 부산의 미래’란 칼럼에서 넘쳐나는 노인에게 초점을 맞춘 실버 도시로 거듭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칼럼은 “부산은 대도시 생활에 익숙한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노후를 보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라며 좋은 자연경관과 온화한 날씨, 서울보다 싼 집값, 의료 경쟁력에 기반해 ‘실버 수도’를 목표로 도시를 새로 디자인하자고 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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