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시간 외에도 수시로 전화영업을 했던 노동자의 과로사가 법원에서 인정됐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30년 이상 건설장비 판매 영업업무를 해왔다. A씨는 2022년 3월 고객사에 방문해 건설장비 상태를 확인하던 중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나흘 뒤 사망했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망원인은 뇌경색증이었다.

유족은 A씨 사망이 과로 등 업무적 요인에 의한 재해에 해당한다며 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개인적 요인에 의한 발병 가능성이 더 높다며 부지급 결정을 했다.

쟁점은 사망 전 노동시간이다. 공단은 근태기록대장을 근거로 A씨가 사망 전 일주일간 코로나19 확진 휴가로 일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사망 전 4주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26시간, 사망 전 12주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35시간으로 산정했다. 고용노동부 고시상 과로 인정 기준 업무시간인 발병 전 12주간 주당 평균 52시간에 못 미친다.

법원은 업무부담 가중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족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먼저 형식적 기록이 아니라 실질적 업무시간을 살폈다. 재판부는 “근태기록대장에 기재된 업무시간 외에도 고객과 전화통화 등 영업활동뿐 아니라 건설장비 탁송 등 고객사 방문 업무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사망 전 일주일간 고인이 업무를 전혀 안 했다는 공단 판단에 대해 재판부는 “고인은 대면 영업 대신 종일 전화를 이용해 영업업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망 전 12주간 52시간을 초과했다고 볼 순 없어도 50시간에 가깝다”고 봤다. 근태기록대장에 기재된 업무시간이 적다는 사정만으로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 관련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아울러 고인이 장기간 승진 누락된 상태를 짚으며 “2021년 말부터 승진 인사가 발표되는 2022년 초까지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승진했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봤다. 코로나19가 생산 차질과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고객 항의가 많은 점, 대면 영업이 어려운 점도 정신적 부담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영업직의 경우 전화 통화 및 고객 응대 같은 업무가 많은데 근무 기록에는 반영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며 “이런 영업직 특성을 고려해 관련 증거를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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