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하다니 재난이다. 1주일 뒤 변론기일이 잡혀 있는 통상임금 사건과 임금피크제 사건에 관해서 원고 노동자들의 대표가 보낸 메일을 찾다가 받은메일함에서 이런 취지의 글을 읽었다. 민변 노동위원회가 회원들에게 보내 온 ‘헌법상 보장된 단체행동권의 행사를 재난으로 규정한 정부의 노동개악을 엄중히 규탄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였다.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윤석열 정부가 규정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이 성명서를 읽고 나서 알게 된 나는 요즘 내가 너무 무심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사무실에서 상담하고 소송하는 게 전부가 돼 버린 지 오래다 보니 개별 사건에 갇혀 이렇게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노동개악하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자책까지 들었다. 정부가 사회재난으로 규정해서 노동자 파업에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니, 노동개악으로서 엄중히 규탄해야 마땅했다고 성명서의 취지에 공감하면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2.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 이달 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17일부터 시행됐다. 이 시행령에 사회재난유형 27종을 신설하면서 ‘국가핵심기반의 마비’가 포함됐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른 쟁의행위 또는 이에 준하는 행위로 인한 마비를 포함시켰다. 이에 다음날인 18일 민변 노동위원회는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하는 정부의 이번 시행령 개정에 대해서 노동자·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재난이라고 규탄하는 성명을 내게 됐던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서 파업을 재난이라고 하다니. 나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동안 윤 정부에서 펼쳐 왔던 각종 노동정책은 노동자의 자유 등 기본권 행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였다. 노동자가 노조 등으로 단결해서 교섭하고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자유에 관해서 윤석열 정부가 더 보장한 것이 있는가 한번 떠올려 보자. 도대체 뭐가 떠오르지 않는다. 반대로 그 자유를 제한한 것을 떠올려 보면, 노조 회계공시 등을 포함해서 윤석열 정부에서 노조활동 등 노동자의 자유를 제한하려 한 것들을 내 머리는 쉽게 찾아낸다. 그래서 노동자의 파업까지도 재난으로 취급해 권력이 대응할 수 있도록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령인 시행령을 개정한다는 것이 나는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시행령 개정에 놀라는 자가 있다면 나는 놀랄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 권력의 행태가 계속되고 있을 뿐인데 뭘 새삼 놀란단 말인가. 단지 뭘 더 한다는 것이 걱정이고 뭘 더 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다. 어떻게 이 나라는 노동자의 자유 등 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한하고 금지하기 위해서 달려만 가고 있는 것인가, 아무런 기대도 없이 절망스럽기만 하다. 그래서인가. 분노도 없이 냉담하다. 노동자의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해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는 데도 나는 차분히 마지막까지 성명서를 읽고, 태연히 개정된 시행령의 조문을 찾을 정도로 말이다.
성명서에서 “개정된 시행령으로 인해 향후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다양한 쟁의행위와 집회에 대해 ‘재난대응 명목’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이뤄질 것이 우려된다”고 민변 노동위원회는 이번 시행령 개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를 사회재난으로 포함시켜 정부의 재난 대응 대상이 되도록 법령 개정을 한 것이니 이를 근거로 쟁의행위에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당연하다. 더구나 이미 윤석열 정부가 걱정시킨 사례도 있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서였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화물연대 파업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 범정부적 차원의 대응을 했다. 이와 관련해서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올해 3월 ‘한국 정부의 화물노동자 파업에 내린 업무개시 명령은 결사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법적 근거까지 구체적으로 마련해서 노동자 파업에 공권력이 재난대응할 수 있도록 했으니 노동자 파업의 자유가 보장되기를 바라는 이라면,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3. 그런데 위와 같은 민변 노동위원회의 걱정을 곰곰이 보자.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쟁의행위에 대해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이뤄질 것을 성명서는 우려했다. 그럼 부당하지 않은 적법한 공권력 행사가 이뤄진다면?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해서 재난대응 명목으로 법령에 근거해서 공권력이 행사될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이런 쟁의행위에 대해서 법령에 근거해서 적법하게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더 문제이고, 걱정해야 한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쟁의행위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쟁위행위 일반에 대해 국가 재난상황, 국가경제 등 국가적 위기상황 운운하며 국가권력을 행사해서 규제하려는 것이 문제인 것이고 이 나라 노동자는 걱정해야 한다. 이렇게 걱정하고서 보니, 나는 다시 이 나라에서 파업의 자유, 노동자의 자유를 생각하는 데 이르게 된다. 과연 이 나라에서 노동자에게 자유, 즉 파업의 자유가 보장되더란 말인가.
성명서에서 민변 노동위원회는 파업을 재난으로 규정한 것이 오히려 재난이라고 규탄했다.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해서 사회재난으로 규정해서 국가적 재난시 행하는 공권력으로 대응하겠다고 시행령을 개정·시행하는 것은 분명히 재난이라고 규탄해야 마땅하고,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말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규탄이 당연하다고 말하면서도 담담하다.
이미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파업은 이미 범죄고, 불법이다. 여기에 더해 재난으로 취급한다고 해서 얼마나 더 노동자의 자유에 대한 억압인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담담하다. 당신이 노조법을 제1조부터 마지막 조문까지 한 번 읽어 보라. 과연 노조법이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교섭하고 파업 등 쟁의하는 걸 보장하기 위해서 입법돼 시행되고 있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 노조를 조직해서 교섭하고 쟁의하는 걸 제한·금지 등으로 규제하기 위해서 입법돼 시행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지, 노조법 전부를 읽고서 선택해 보라. 당신은 생각 없이 읽지 않았다면, 노조법이 이 나라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해서 교섭과 쟁의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감히 말하지 못할 것이다.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는 파업 등 쟁의행위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예외적으로 주체, 목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 등 정당성을 갖춘 경우에 허용되도록 노조법은 규정하고 이에 따라 법원은 판결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자의 파업은 이 나라에서 원칙적으로 불법이고 범죄인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의 파업이 불법이고 범죄인 나라에서 파업의 자유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노동자가 단체행동권을 보장받고 있다고, 노동자가 파업 등 쟁의행위할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고 교과서에서 학설하고 판결문에서 판시해도 파업의 자유는 없다. 예외적으로 주체, 목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 등을 갖춘 경우에 정당할 수 있다는 나라는 노동자에게 파업의 자유가 보장돼 있지 않다. 원칙적으로 말하자. 이 나라에서 파업은 범죄고 불법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자유, 단결의 자유를 빼앗는 우리 사회의 재난이라고 할 수 있다.
4. 여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읽은 당신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의 자유에 무심하지 않다면 이번에 정부가 사회재난으로 규정해서 재난대응하려는 시행령을 개정한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를 제한하고 금지하는 노조법을 비롯한 법령의 문제를 생각해 볼 것이다. 그저 놀라는 것을 넘어서 이 나라에서 파업의 자유, 단체행동권의 행사를 보장하지 않는 데 대해서 심각하게 우려하면서 노동자의 자유를 걱정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는 노동자의 자유, 파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을 모른다. 학설도, 판례도 모른다. 원칙적으로 보장되고 있는데 예외적으로 제한받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모른다는 것을 말한다. 심각한 것은 노동운동조차도 모른다는 데에 있다. 노동자의 자유, 노동자가 노조 등으로 단결해서 교섭하고 파업 등 단체행동할 자유를 쟁취해서 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노조법 2·3조를 개정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을 넘어서 노동자가 파업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을 막고 있는 노조법에 대한 전면적 개폐, 우리 사회의 재난에 대한 투쟁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데, 2024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그렇지 못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