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돌봄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심각한 우려와 잠재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정책의 추진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돌봄노동의 본질적 가치와 이주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보다는 경제적 효율성과 단기적 인구 정책 목표에 치중하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 정책의 이면 : 우려와 위험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응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개혁을 통한 불평등 해소,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적극적 정책, 그리고 무엇보다 공공 돌봄서비스의 질적·양적 확충에 있다. 그러나 현 정책은 이러한 본질적 접근을 외면한 채, 가구와 개인들이 사적으로 저렴한 돌봄노동을 구매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돌봄의 책임과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돌봄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서울시 시범사업과 정부 정책의 문제점 : 노동권 보호 후퇴
서울시의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은 이러한 정책의 구체적 실현 사례다. 만 24~38세의 필리핀 국적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 사업은, 비전문취업비자(E-9)를 통해 100명 규모로 시작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사업에서 논의되는 업무 범위가 가사와 육아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향후 돌봄 전반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은 돌봄노동의 가치 평가와 노동권 보호 체계에 대한 근본적 재고를 요구한다. 특히 육아 업무 포함은 가사 지원을 넘어 돌봄의 질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며,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외국인 가사사용인 5천명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나 ‘가사사용인'이라는 용어 사용은 이들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약화시키고, 노동법 보호의 사각지대를 확대할 위험이 있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문제를 넘어, 이들의 법적 지위와 권리 보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특히 외국인 유학생(D-2 비자)의 가사노동시장 진입 허용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고 새로운 형태의 착취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유학생의 본래 목적인 학업 수행과 가사노동의 병행은 학업의 질 저하와 노동 착취라는 이중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정책의 추진 과정 또한 노동권 보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 비준 거부는 국제노동 기준에 부합하는 가사노동자 보호에 대한 정부의 의지 부족을 드러낸다. 2023년 ‘킬러규제 혁파’ 정책은 노동권 보호보다는 경제 활성화에 중점을 둔 접근으로,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위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최근 대통령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ILO 조항에서 탈퇴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발언한 것은 국제노동 기준을 경시하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위험한 시그널을 보낸다.
인종·젠더·계급의 교차와 복합적 차별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인종·젠더·계급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복합적 차별과 착취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특히 입주 형태의 근무 환경은 이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다양한 형태의 인권 침해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성폭력, 임금체불, 과도한 노동시간 강요 등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언어적 장벽과 법적 지위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적절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노동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배제를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개발도상국 출신의 여성 가사노동자들은 특히 다중적 차별에 직면할 위험이 높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돌봄노동에 적합하다고 여겨지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해야 한다고 간주되며, 저학력이라는 편견 때문에 그들의 노동권이 경시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 차별은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노동시장 내에서의 공정한 기회와 대우를 받기 어렵게 만든다.
공적돌봄 체계와 노동환경 개선
따라서 현재 형태의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 정책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대신 우리는 더욱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사회권 보장, 장시간 노동 문화 개선, 일·생활 균형 정책의 강화, 그리고 공공성이 보장되는 돌봄 체계 구축을 포함해야 한다. 다양한 선행 연구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성평등 정책이 일·생활 균형과 돌봄 책임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험은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 향상과 함께 일·생활 균형 개선에 기여하고, 성평등 정책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고 출산율 제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침을 증명한다. 또한 접근성 높은 공적 돌봄서비스 확충이 맞벌이 가정 지원과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 돌봄의 사회화는 단순히 공공보육 시스템의 확대를 넘어선 포괄적 개념이다. 이는 지역사회와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연계돼 돌봄에 참여하는 구조를 의미하며, 돌봄의 책임이 개인이나 가족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포함한다.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은 돌봄 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모든 구성원의 권리와 존엄성이 존중받는 사회적 돌봄체계 구축이다.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 정책은 단기적 대응이 아닌,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 변화의 관점에서 고민되고 토론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종·젠더·계급의 교차성을 고려한 다차원적 접근이 필수적이고, 노동환경 개선, 성평등 실현, 사회 서비스 강화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 정책으로 구체화돼야 한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정책을 추진할 때 돌봄의 수요가 있는 가정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이주민 단체 그리고 노동조합과 충분한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
통합적 접근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대안적 길을 찾는 것은 더딜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일하고 있거나 앞으로 일하게 될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돌봄의 가치를 새롭게 인정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단순한 노동력 확보를 넘어 사회 전반의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중요한 경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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