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선호 변호사(금속법률원 경주사무소)

1. 아사히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법적 분쟁의 원인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 주식회사(변경 전 상호명에 따라 ‘아사히’라 함)는 구미에서 TFT-LCD용 유리 기판을 제조·가공해 LG디스플레이 등에 판매하는 회사다. 유리 기판은 HOT공정(원료를 용해해 글라스를 성형, 냉각하기까지의 공정), COLD공정(성형된 글라스를 고객 주문에 맞게 절단, 포장, 검사해 출하하는 공정), GUT공정(재검사나 세정이 필요한 제품을 재유동하거나 정상제품을 작은 사이즈로 절단해 출하하는 공정)을 거쳐 생산·판매된다. 아사히는 지티에스와 도급계약을 체결했고, 지티에스 소속 노동자들은 아사히 구미공장 내에서 COLD공정에서 검사·포장·입고 작업을, GUT공정에서 투입·검사·절단·포장·입고 작업을 담당했다.

한편 아사히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은 2015년 5월29일 3개의 사내하청업체 종사자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같은해 6월1일 사내하청업체 중 하나인 지티에스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지티에스는 2015년 6월30일자로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한 차헌호와 B를 징계해고했고, 아사히는 같은 날 사업장 내 전기공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구미공장에서 퇴거시켰다. 아사히는 2015년 7월1일 용역을 동원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구미공장 출입을 전면 통제하기 시작했고, 2015년 7월31일자로 지티에스와의 도급계약을 중도해지했다. 지티에스는 소속 노동자 17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 후 희망퇴직을 거부한 조합원들은 2015년 8월31일자로 해고했다.

노동조합과 해고 노동자들은 2015년 7월21일 구미지방고용노동청에 아사히·지티에스 등을 부당노동행위·불법파견 등의 혐의로 고소했고, 2015년 9월14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2017년 7월13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 아사히를 상대로 고용의사표시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2. 판결의 내용 및 의의

대법원은 2024년 7월11일 아사히와 사내하청 노동자 22명 사이에 파견법상 근로자 파견관계가 성립한다는 판결(①),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아사히 법인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는 판결(②), 아사히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성은 인정하지만 도급계약해지가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되지는 않는다는 판결(③)을 선고했다.

대상판결 ①, ②는 근로자 파견과 도급을 구별하는 대법원 판례 기준에 따라 아사히의 유리 기판 제조 공정 일부를 담당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아사히 사이에 근로자 파견관계가 성립한다고 봤다.

대상판결 ①, ②는 아사히측이 도급인이 지시권·검수권과 관련한 문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생산지시서(생산사양서)·작업의뢰서·긴급작업지시서·품질대책보고서 등을 상당한 지휘명령 징표로 평가했다. 또한 사내하청 현장관리자들은 원청 관리자들의 업무상 지시를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쳤고, 사내하청 현장관리자들이나 노동자들이 원청 관리자들의 지시를 임의로 변경하거나 수정할 재량은 없다고 봤다.

아사히측은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 다수가 근무했던 GUT공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퉜다. GUT공정은 COLD공정과 설비가 단절돼 있고, 공간적으로도 분리돼 있으며, 지티에스 소속 노동자들만 생산업무에 종사하므로 혼재와 결원 대체가 없으므로 근로자 파견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아사히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실질적 편입 여부를 판단할 때 공간적 혼재나 결원 대체와 같은 외형이 아니라 전체 생산과정에서 분업적 협업, 기능적 연동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의 태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들로만 구성된 생산공정에서도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작업량이나 작업속도 등에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을 ‘실질적 편입’의 중요한 판단요소로 봤다.

대상판결 ②는 파견법 위반 범죄를 저지른 기업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아사히측에서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일본으로 출국한 일본인 대표이사의 주소를 알 수 없다고 했고, 이에 따라 1심 때부터 일본인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공시송달 후 궐석재판으로 진행돼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이 항소심 판결로 확정됐다). 대상판결 ②의 원심(대구지방법원 2021노2978 판결)은 제조업에서의 적법한 도급을 부정하면 안 되므로 근로자 파견의 징표가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도급으로 봐야 하고, 원청의 관리자가 직접적이고 개별적으로 하청노동자에게 지시를 해야만 파견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그동안 도급과 파견을 구별하기 위해 확립돼 온 실질적·종합적 판단 원칙을 완전히 훼손하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객관적 증거에 반하는 정규직 관리자의 법정 진술을 주요 근거로 해 근로자 파견관계 성립을 부정한 원심의 심각한 법리적 오류와 일탈을 바로잡았다.

대상판결 ③은 아사히의 도급계약 해지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고 지배개입의 의사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원청 사용자성과 관련한 기존의 대법원 판례(2007두8881 판결·2020도11559 판결 등)를 원용하면서, 아사히 노동자들과 사내하청 노동자 사이의 업무적 상호연동성 및 협업관계, 아사히가 사내하청 노동자 채용이나 작업배치, 작업 환경 및 방식에 미친 영향력 내지 지배력의 내용과 정도, 도급계약 해지로 인해 지티에스가 폐업하고 그 노동자들이 모두 해고된 사정을 종합할 때 아사히가 직접 근로계약의 상대방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와 관계에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 주체로서의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3. 대상판결과 9년이라는 시간의 의미, 남은 과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다만 오랜 기간의 법적 분쟁에 종지부를 찍은 대상판결들에, 아사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9년간의 투쟁과 활동을 겹쳐 보고, 현시기의 노동법적 과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한다면 2024년 7월11일 선고된 대상판결들에도 일정한 의미가 있다.

아사히 사내하청 노동자의 9년은 노사관계의 사법화(司法化)와 노동법의 사법화(私法化)라는 이중의 제약을 견디며 싸우는 과정이었다. 노사관계는 사법화(司法化)돼 법원의 판단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됐다. 막대한 돈을 투여하면서 대형 로펌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아사히와 같은 기업은 장기간 법적 분쟁에서 유리하게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아사히측은 실제 법적 분쟁에서는 노동법적 사안에 민사법적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사법화(私法化)의 논리를 스스럼없이 주장하면서, 도급계약의 자유를 외쳤다. 아사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장기간의 법적 분쟁과정에서도 노동자들을 개별화하는 제도와 긴장을 유지하면서 노동조합 고유의 단결과 투쟁, 연대를 실천했다.

아사히의 사용자책임을 확인하고 일터로 돌아가는 과정이 9년이나 걸렸다는 점은 앞으로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말해준다. 사용자책임을 회피하도록 부추기고, 노사교섭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일을 장기간의 법률분쟁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현행 노동법을 변화한 노동현실에 맞도록 전면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한 차례 거부된 후 다시 발의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의 통과와 시행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노동조건·업무수행·노조활동 등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업주의 경우 노조법상 사용자로 보고, 사내하청의 경우에는 원청이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등의 상대방임을 명시해야 한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제도가 확립돼 있었다면, 아사히 사내하청 노동자의 9년은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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