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의시간만 기준으로 시간강사의 초단시간 노동자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소정근로시간에 강의준비·학생관리 등 강의에 필요한 업무시간까지 포함해 주휴수당과 미사용연차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아울러 시간강사들의 소정근로시간을 강의시간 3배로 봐야 한다는 기준을 정해 이번 판결로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던 비정규 교수들의 차별이 해소될지 관심이 쏠린다.
강의시간 주 15시간 미만이면 ‘초단시간 노동자’?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은 11일 국립대 비전업 시간강사 원아무개씨 등 8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임금 등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씨 등은 최근 3년간 주휴수당과 노동절에 대한 유급휴일수당, 미사용 연차휴가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이들이 초단시간 노동자에 해당하는 지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초단시간 노동자는 주휴일·유급휴일·연차유급휴가 규정을 적용받지 못한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4주 평균 1주 동안 소정근로시간, 즉 1일 8시간·1주 40시간 범위에서 노사가 정한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노동자를 의미한다.
강사 강의료는 학기별 총 강의시수(학기별 주수×주당 강의시수)로 계산한다. 원씨 등의 주당 강의시간은 9~12시간이었다. 강사 대부분 주당 15시간을 넘지 않는다. 때문에 주휴수당과 연차는 물론 퇴직금, 산재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최근 교육부는 매뉴얼을 통해 주당 5시간 이상 강의하는 강사들에게 강의시간의 3배를 소정근로시간으로 보고 퇴직금을 적립하도록 했지만, 여전히 초단시간 노동자로 남아 처우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원씨측은 강의준비나 학생평가 등 행정업무에 필요한 시간을 소정근로시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학측은 강의시간만 소정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맞섰다.
엇갈린 하급심 판단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재판장 마은혁 부장판사)는 2022년 2월 소정근로시간을 강의시간으로 한정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기존 하급심 판례 추세와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마다 소정근로시간을 강의시간의 2배로 볼 것인지 3배로 볼 것인지 엇갈렸지만 대체로 소정근로시간에 강의준비 시간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을 담당한 서울고법에서 판단이 뒤집히면서 혼란이 일었다. 서울고법 민사38-1부(재판장 정경근 부장판사)는 지난해 1월 위촉계약에서 정한 주당 강의시수가 강사들의 소정근로시간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소정근로시간은 퇴직금, 연차휴가·주휴수당 청구권 존부가 결정되는 등 근로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범죄 구성요건으로도 기능한다”며 “근로계약 체결 이후 당사자 일방의 주장이나 명확하지 않은 기준을 근거로 이를 추단해도 되는 개념이 아니다”고 봤다.
재판부는 소정근로시간이 실제와 다를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자가 추가 근로시간에 대한 미지급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것으로 해결할 문제”라며 소정근로시간을 사후적으로 변경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 직후 일부 국립대에서 강사들의 퇴직금 적립을 멈추는 등 초단시간 노동자 여부가 또다시 문제가 됐다.
대법 “강의시간만 고려하면 근기법 취지 몰각”
대법원은 강의시간만을 기준으로 초단시간 노동자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된다며 비정규 강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위촉계약에 따라 강사들이 수행해야 할 업무는 수업시간 중 이뤄지는 강의에 국한되지 않았다”며 “강의준비, 학생관리, 평가 등 업무는 시간강사가 강의할 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업무로서 강사들이 학교에 근로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업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교수 등 전임교원의 경우 구 고등교육법 시행령상 교수시간을 주 9시간을 원칙으로 정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강의 수반 업무 수행에 일반적으로 상당한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만약 강사가 대학에 근로를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는 전체 시간이 강의시간을 초과하는 것이 분명한 데도 강의시간만을 기준으로 초단시간 노동자 여부를 판단하면 ‘근로시간이 매우 짧아 사업장 전속성이나 기여도가 낮고 임시적·일시적 근로를 제공하는 일부 노동자’만 예외적으로 주휴와 연차휴가 규정 적용을 배제하려는 근로기준법 취지가 몰각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강사의 소정근로시간 기준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강의시간의 3배에 해당하는 시간이 대학의 시간강사가 강의와 수반 업무를 수행하는 데 통상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며 “다만 이를 절대적 기준으로 볼 것은 아니고, 법원은 여러 사정을 아울러 참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원씨 등을 대리한 여연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초단시간 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여러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므로 초단시간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점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은 강의 외에도 여러 업무를 수행하는 시간강사에 대해 강의시수만을 기준으로 초단시간 노동자라고 간주한 대학들의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거는 판결”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