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삼성과 LG 등 한국 굴지의 대기업에 민주노총 소속이 아닌 비교적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노동조합이 잇따라 결성되자 우리 언론은 정치 파업 대신 ‘탈정치’를 표방한 MZ노조가 속속 들어선다고 칭찬했다. 언론은 기성노조의 정치 편향을 탈피해 실리를 추구하는 노조라고 환영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4월9일 ‘탈정치 넘어 공정 보상 추구로 세 확장 … 정체성 세워가는 MZ노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MZ세대 노동조합이 진화하고 있다”며 “삼성그룹에서는 2030세대가 주축이 된 초기업 노조가 출범”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이 기사에서 새로 등장한 MZ노조가 기존의 생산직 노조엔 반감이 크다고 소개했다.

한국일보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한국일보는 “선배 세대 노조의 활동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환경에서 노조를 조직할 수 없었다. MZ노조라는 명칭으로 노조를 세대로 구분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네이버 노조를 이끄는 오세윤 지회장의 발언도 담았다. 하지만 노동자 내부의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이런 류의 기사는 여러 언론에 등장했다.

이들 젊은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칭찬 일색이던 언론의 태도는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5개 삼성전자 노조 가운데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지난 8일부터 사흘간 1차 파업에도 회사의 태도가 바뀌지 않자,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노조의 무기한 파업 선언 직후 언론은 일제히 사설로 노조를 물어뜯었다.

서울신문은 ‘TSMC(대만 반도체 회사) 시총 1조 달러 찍는 판에 삼성전자 총파업’이란 사설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이 반등의 기회를 잡아야 할 중요한 시기를 골라 일손을 놓았으니 유감스럽다”고 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내팽개친 서울신문은 노조가 파업할 때까지 회사가 보인 모습에는 눈을 감았다.

한국일보는 ‘총파업 목표가 생산 차질이라는 삼성전자 노조’라는 사설에서 “문제는 노조가 파업 목표로 ‘생산 차질’을 내세우고 있는 점”이라고 짚었다. 우리말 사전에 ‘파업’은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의 유지 및 개선이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일제히 작업을 거부함으로써 사업자나 정부에 타격을 주려는 행위”다. 파업이 ‘기업에 타격을 주려는 행위’라는 상식조차 거부했다.

조선일보는 ‘韓 반도체, 전력난 용수난 인재난 이어 이제 파업난까지’라는 사설을, 중앙일보는 ‘국민 세금까지 지원해 준 대표 기업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이란 사설을 썼다. 이렇게 일제히 전삼노를 맹비난하는 사설이 실린 7월11일자 신문엔 한결같이 삼성전자 갤럭시 휴대폰 광고가 무더기로 실렸다.

같은 날 신문 주요 면엔 ‘폴더블폰에 갤럭시 AI 심었다’(한국일보 2면), ‘회심의 삼성 AI 업고 접어’(경향신문 16면), ‘만나서 반가워 말하니… 뒷면서 Nice to meet you’(국민일보 15면), ‘삼성 폴더블 AI폰, e메일 써주고 음성 자동 요약’(동아일보 B1면), ‘폴드는 아이폰만큼 가볍고 플립은 화면 주름 안 보여’(조선일보 B1면) 등의 제목을 단 삼성전자 홍보실 수준의 낯부끄러운 기사가 덕지덕지 실렸다. 실리주의 시각에서 봐도 삼성전자 내 노사 상생은 언론이 다 망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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