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에서 직장내 괴롭힘 가해행위가 인정되지 않아도 괴롭힘 피해자의 우울증을 업무상질병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내부고발하니 직장내 괴롭힘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서경민 판사)은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산불예방진화대 기간제 노동자로 2019년 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2년 가까이 일했다. 평상시 산불 예방·감시·산림보호 계도·순찰활동을 하다가, 산불 발생 출동 명령시 현장으로 긴급 투입돼 소방호스 공급·방화선 구축·잔불 정리 등을 수행했다.
A씨는 내부고발자였다. 2019년 10~11월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퇴직공무원 사택 땔감 작업지시, 상수원보호지구 훼손 등 진화대 내부 부당행위를 진정하거나 민원을 제기했다. 그의 제보로 이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또 A씨는 2021년 4월 같은 반원들이 일과시간 대기 중 도박을 하고, 관리자인 공무원이 이를 저지하지 않은 행위, 반장이 A씨에게 욕설하며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한 행위 등으로 반원들과 공무원을 도박·모욕·협박·직무유기로 고소했다. 청주지검은 이듬해 9월 혐의없음 불기소 결정을 했다.
상·하반기 단위로 계약하던 A씨는 허리부상을 이유로 지원하지 않았다. 퇴사 이후 그는 2021년 4월 불안·우울장애 등을 진단받고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A씨에게 발병 원인이 있다며 불승인했다. 같은 상병으로 진료받은 이력이 있는 점, 개인적 성향으로 인한 갈등으로 직장내 괴롭힘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법원, 불기소에도 사실관계는 인정
“욕설·폭언 부당한 처우 부정 안 돼”
법원은 노동자측 손을 들어줬다. 서경민 판사는 직장내 괴롭힘 등 A씨가 제기한 부당행위가 검찰 수사에서 불기소 결정을 받았으나 사실관계가 인정됐다는 점부터 짚었다.
서 판사는 “A씨 (권익위에) 진정 이후 처리 내역을 보면 A씨가 주장한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됐다”며 “A씨 고소 사건에서도 불기소 결정이 있었으나 법리와 고의 유무 판단에 따른 것이고,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됐다”고 판시했다.
이어 “특히 수사기관 조사를 통해 A씨가 반장으로부터 욕설 섞인 폭언을 듣거나, 다른 반원을 통해 위해를 가하겠다는 험담도 포함돼 있었다”며 “A씨의 진정과 고소 등이 동료나 상사에 대한 모함이나 트집잡기로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개인적 성향이 원인이라는 공단 판단에 서 판사는 “설령 A씨가 직장에서 갈등을 겪고 진정과 고소를 한 데 개인적 성격이 반영됐을 여지가 있어도, 이는 직장내 갈등에 대한 것일 뿐, 욕설·폭언 등과 같은 부당한 처우 자체를 유발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 병력의 영향이 크다는 공단 판단에 대해선 “2013년과 2015년 무렵 같은 유형의 질환으로 진료를 받았고 현재 정황과 비슷한 갈등을 겪었다는 소견이 있다”면서도 “2015년 5월 이후 이번 사건으로 진단받은 2021년 4월 이전에는 진료받은 내역이 없으므로 과거 질환이 진화대 입사 전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기각했다.
법원 감정에서 A씨가 재취업을 반복했다는 이유로 정서적 고통이 심하지 않다는 감정의 소견이 나왔지만 서 판사는 “계약직 노동자가 계속 근무했다고 해 업무상 스트레스가 과중하지 않다거나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서적 고통이 심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형사사건 결과 상관없이 업무상재해 인정받아야”
A씨를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직장내 괴롭힘 사건에서 형사는 가해자 처벌이 목적인 반면, 산업재해는 피해자 회복이 목적인 만큼 그 의의가 전혀 다르다”며 “형사사건 결과와 상관없이 법적 조력을 얻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