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법원이 저성과자 교육을 핑계로 ‘역량강화 프로그램’(PIP)을 이용해 노동자를 인사발령·정직 조치한 대기업의 인사관리에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

희망퇴직 거부자들에 ‘저성과자 낙인’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롯데하이마트㈜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보직해임 및 부당인사발령 구제 재심판정 취소 사건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측은 2021년 1월 지점장 448명 중 23명을 PIP 대상자로 선정하고 지점장 보임에서 해임했다. 문제는 이들이 희망퇴직 거부자들이라는 것이다. 사측은 2020년 3월과 12월 두 차례 간부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는데, 이를 거부한 이들 중 일부를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했다.

PIP 대상자로 선정된 표면적 기준은 △2년 평균 고과 하위 15% △당해연도 역신장 △당해연도 매출 달성률 하위 30% △당해연도 매출 이익액 달성률 하위 30% 등이다. 그런데 대상자들이 이 조건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근거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사측은 십수 년간 관리직 업무를 하던 이들에게 판매업무를 시켰다. 소속은 본사 영업총괄팀으로 하되 각 매장에 교육파견을 보냈다. 이런 형태의 근무는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파견된 매장은 주거지에서 5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3개월마다 매장이 바뀌었고, 본사에 들어가서 5분가량 실적을 발표한 뒤 20~30분 문제점을 지적받아야 했다.

PIP 평가를 통해 ‘최우수’면 지점장 보임, ‘우수’면 세일즈리더 전환, ‘미흡’이면 역량강화 교육 파견을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기준은 없었다.

A씨 등 6명은 부당발령이라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사측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업무상 필요에 따른 발령 아냐”

법원 판단도 노동위와 다르지 않았다. 1·2심은 사측의 인사발령이 업무상 필요에 따라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측이 희망퇴직 거부자들을 PIP 대상자로 선정한 점을 지적하며 “비록 온라인 상거래의 활성화와 코로나19 등 대외 여건 변화에 따라 지점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PIP의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해도, A씨 등에 대한 인사발령이 이뤄지게 된 경위와 내용, A씨 등의 생활상 불이익 등에 비춰 인사발령이 업무능률의 증진, 직장질서의 유지회복 또는 노동자 간의 인화와 같은 업무상 필요에 따라 이뤄진 것인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PIP 대상자가 지점장에서 일반 판매사원으로 전환되는 등 불이익을 받는 데도 PIP 대상자 선정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점, 현장 판매 실적 등 PIP 평가 기준이 지점장 역량 평가에 맞지 않고 잦은 근무지 변경으로 이마저도 어려운 점 등도 지적됐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A씨는 “사측은 2021년 11월 취업규칙까지 개정해 PIP를 통해 더 많은 인원을 내보내려고 했으나 노동자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멈췄다”며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사측에서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노조간부 징계, 법원 “근무태도와 무관”

현대자동차가 PIP를 남용해 부당징계를 내렸다는 법원 판결도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김준영 부장판사)는 현대자동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정직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부당징계 대상자는 현승건 전 금속노조 현대차 연구일반직지회장이다. 사측은 2009년부터 인사평가 결과 하위 2%에 해당하는 간부사원을 대상으로 PIP를 시행해 왔다. 현 전 지회장은 2016~2018년 저조한 인사평가 결과를 받았다. 2019년 PIP 대상자로 선정됐고 평가 결과 꼴찌였다. 사측은 이듬해 7월 ‘근무태도 및 근무성적 불량, 상사 업무지시 불이행’을 이유로 현 전 지회장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현 전 지회장은 또 2017~2019년 인사평가 결과 저조로 2020년 PIP 대상자로 선정됐고 평가 결과 꼴찌였다. 사측은 2021년 5월 ‘근무태도 및 근무성적 불량’을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현 전 지회장은 2021년 부당정직이라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경기지노위는 정당하다고 봤으나 중노위는 이를 뒤집고 부당하다고 봤다.

법원은 노동자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인사평가 결과를 포함해 정직 중 일부 징계사유는 이중징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사측 주장처럼 PIP 평가 결과만을 징계사유로 삼았다면 40%나 반영되는 PIP 점수의 구체적 평가항목이 근무태도나 근무성적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에 앞선 2020년 징계에 대해선 정당한 징계라는 1심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근로자에 대한 인사평가는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서 사용자에게는 인사평가의 방법 등을 결정하는 데 상당한 재량이 있다”고 판단했다.

현 전 지회장은 일반직지회를 조직하고 2004년 기존 취업규칙과 별도로 만들어진 간부사원 취업규칙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