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보험의 의무 적용이 확산되는 등 업계에서 배달종사자 보호의 대표 모델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배달음식 주문 어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자회사 우아한청년들은 2022년 12월 라이더의 유상운송보험료 부담을 낮추기 위해 보험사와 논의 끝 출시한 ‘시간제보험’ 3주년 기념 보도자료를 내며 이같이 밝혔다. 당시 우아한청년들은 유상운송보험을 “‘의무 적용’ 중인 업체는 우아한청년들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1년6개월 만인 이달 2일 우아한청년들은 유상운송보험 의무화 제도를 폐지했다. 라이더의 안전은 물론 시민, 도로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배달업체의 이같은 결정을 제재할 법·제도적 장치는 없다.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상운송보험은 이륜차를 이용해 음식을 배달하다가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인·대물 배상이 가능한 보험을 뜻한다. 이륜차 일반 운전자보험인 가정용보험보다 보험료가 비싸지만, 가정용보험의 경우 노동자가 이륜차를 이용해 업무를 수행하다 발생한 교통사고 피해는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배달노동자는 유상운송보험 가입을 해야 한다.
“진입장벽 낮춰, 라이더 수급”
우아한청년들의 유상운송보험 의무화 정책 폐지는 라이더 수급을 원활히 하기 위함이라는 게 중론이다. 배달시장은 코로나19로 급성장했지만, 현재 그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지난 2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 서비스(배달 음식) 온라인 거래액은 26조4천억원으로 전년보다 0.6% 줄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7년 이후 첫 감소다.
업체 간 경쟁은 심화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쿠팡이츠는 자본을 등에 업고 배달의민족을 매섭게 추격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5월 쿠팡이츠 월간 활성이용자수는 약 698만명으로 전년보다 2배 증가했고, 배달의민족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3월 쿠팡이츠가 와우멤버십 회원 대상으로 무료배달에 나서는 등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자, 배달의민족도 4월부터 묶음배달 서비스인 ‘알뜰배달’을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점유율 유지와 확대를 위해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에 나선 셈이다.
우아한청년들 관계자는 “코로나가 끝난 뒤 라이더로 일하던 분들이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면서 라이더가 줄어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배달의민족이 기존 이용객을 묶어두려면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 즉 라이더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아한청년들의 유상운송보험 의무화 정책은 신규 라이더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장벽이 된다. 유상운송보험은 예측 불가능한 사고에 대비한 보험으로 라이더에게는 당장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경쟁업체인 쿠팡이츠는 라이더가 유상운송보험 가입을 증명하지 않아도 일할 수 있다. 쿠팡이츠가 라이더 유입에 더 유리한 상황이란 뜻이다.
“라이더 안전과 수입에 영향 미칠 것”
문제는 유상운송보험 가입은 라이더 안전은 물론 시민, 도로의 안전과도 직결된다는 점이다. 유상운송보험을 들지 않고 일하던 라이더가 사고를 당하면 대인·대물 보상책임은 오로지 라이더가 보상해야 한다. 자유로운 보험 가입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신규 라이더 유입 증가는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수수료가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이 경우 근로조건 저하와도 연결된다. 수익감소는 라이더가 더 많이 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결국 라이더 안전을 해친다.
국토교통부가 2022년 12월 발표한 ‘2022년 배달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배달종사자 중 43%는 최근 6개월 내 평균 2건의 교통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종사자 1천2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들은 주요 사고의 원인으로 ‘촉박한 배달시간에 따른 무리한 운전(42.8%)’, ‘배달을 많이 하기 위한 무리한 운전(32.2%)’ 등을 꼽았다.
이미 유상운송보험에 가입해 일하던 라이더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수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라이더 유입이 많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부업 라이더의 진입보다는 전업으로 일하던 라이더들의 보험가입 유인을 떨어질 수 있다”며 “배달 단가가 떨어지고 있고, 수입이 줄다 보면 보험을 유지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아한청년들은 “유상운송보험에 가입하면 자신의 수익이 줄어드니 자율적으로 보험상품 선택하게 해 달라는 라이더들의 이야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기존 라이더의 유상운송보험 해지로 이어질 가능성을 방증한다.
“배달산업 전체 의무화해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자동차손배법)은 이륜차 운전자에게도 책임보험이나 책임공제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보험은 가정용과 유상운송보험, 비유상운송보험 등으로 세분화돼 있지만 이륜차를 이용해 업무를 하는 퀵서비스 기사나 배달노동자의 유상운송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는 없다.
홍창의 배달플랫폼노조 위원장은 “유상운송보험 가입 의무화는 최소한의 안전조치로 (의무화하는데) 여야 모두 반대할 명분이 크지 않다”며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서비스법)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입법을 추진하려 내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생활물류서비스법 개정은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인증사업자 또는 영업점이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 종사자 등의 운전자격 확인 등 책무를 담고 있는데, 유상운송보험 가입 여부 확인 책무 등을 더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지부장은 “단순 보험가입의무제뿐만 아니라 안전교육, 보험가입, 이륜차 면허 등 세 가지 요건에 갖춘 사람들이 라이더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자격인증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그래야 라이더와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수민 부연구위원은 “기업 간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어떤 기업은 유상운송보험을 의무화하고, 어떤 기업은 의무화하지 않으면 의무화하지 않은 기업이 이득을 보는 구조”라며 “배달 산업 전체에 유상운송보험을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법적인 규제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