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이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헌법재판관 9명 중 4명이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5명의 헌법재판관이 합헌에 손을 들어 비록 위헌 결정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만장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던 2012년과 사뭇 대조된다. 사법부조차도 제도의 위헌성에 기울어지고 있는 만큼 입법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수노조 탄압에 악용됐던 교섭창구단일화

헌법재판소는 27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9조 2항 등 위헌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5 대 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노조법 29조의2에 따르면 사업장 내 노조가 2개 이상인 곳은 교섭대표노조를 정해 교섭해야 한다. 교섭대표노조를 사업장 안에서 자율적으로 정하지 못하면 과반수노조가 교섭대표권을 가진다. 사용자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기로 동의하면 개별교섭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사측이 제도를 악용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사측 입맛에 맞는 노조가 소수일 경우 개별교섭을 택할 수 있다. 반대로 해당 노조가 다수일 때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요구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에 민주노총은 노동 3권 침해라며 이번 헌법소원에 나섰다.

합헌 결정을 한 이종석·이영진·김형두·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은 “노조법이 규정한 개별교섭·교섭단위분리·공정대표의무 조항 등은 교섭창구단일화를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서 노조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노조법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와 관련된 노조의 투표 과정 참여를 통해 쟁의행위에 개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고 봤다. 노조법에 따르면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경우 그 절차에 참여한 노조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소수의견 “소수노조 단체교섭권 보장 절차 미비”

반면 이은애·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일부 반대의견을 내놨다. 재판관들은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노조의 독자적인 단체교섭권 행사를 전면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관들은 “노조법은 공정대표의무에 관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공정대표의무 내용은 법원 해석으로 구체화된다”며 “법원이 인정하는 정보제공이나 단순 의견수렴 등의 절차는 요식적인 것에 그칠 수도 있어 소수노조 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데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 절차는 조합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라며 “그러나 노조법은 교섭대표노조가 사용자와 잠정적으로 합의한 단체협약안에 대한 확정 절차에 소수노조가 참여할 수 있는 규정을 두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교섭대표노조의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소수노조가 자신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시킬 수 있는 방법이나 수단에 대한 규정도 두지 않아 공정대표의무만으로 소수노조의 절차적 참여권이 제대로 보장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관들은 또 “자율적 개별교섭은 교섭창구단일화로 인한 문제점을 보완하는 조치로 보이지만 사용자 동의로만 개별교섭이 가능해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형평성을 담보하기에 취약하다”며 “교섭단위분리 제도 역시 인정기준이 비교적 엄격하고 노사 자율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위원회 결정으로만 가능하므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형평성을 담보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봤다.

재판관 판단 달라진 배경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2011년 7월 시행 당시에도 위헌 논란이 컸다. 하지만 헌재는 그 이듬해 4월 재판관 만장일치로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불가피하게 도입된 제도”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제도가 시행된 13년 동안 현장에서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 침해 사례가 쌓이면서 헌법재판관의 시각도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담당한 조현주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결론이 합헌이라고 해서 제도 자체가 올바르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문제가 있다고 설시된 이상 사법부의 결정 취지에 따라 합헌적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입법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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