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천시에서 가장 큰 공공부문 사업장 노동조합에서 상담을 의뢰했다. 해당 사업장은 부천시를 대신해 지역의 공공시설을 관리·운영하고 도시개발을 담당하는 지방공기업이다. 부천시의 조례에 따라 설립된 공기업으로 부천시장에게 관리·감독의 권한이 있다.
부천시 예산법무과 명의로 해당 사업장에 내려온 공문에는 노사 단체교섭의 의제 등에 대해 지자체와 사전협의하고 승인받으라는 취지의 협조 요청이 담겨 있었다. 공기업의 노사가 단체교섭을 통해 합의한 임금과 근로조건은 ‘임직원 보수 등에 관한 사항’으로 해당 공사의 정관이나 규정의 개정으로 실현된다. 부천시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니 효율성을 위해 사전에 노사교섭 내용을 부천시에서 허락을 맡으라는 것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단체교섭에서 노사 합의에 대한 자주적 교섭원칙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노조법 48조는 “노동 관계당사자는 단체협약에 노동관계의 적정화를 위한 노사협의 기타 단체교섭의 절차와 방식을 규정하고 노동쟁의가 발생한 때에는 이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도 부천시는 해당 공사의 설립 근거가 된 지자체 조례를 들어 지자체장이 임직원의 보수 등에 관한 노사 합의에 대해 승인권을 행사해 왔다. 물론 지방공기업법은 지자체장이 해당 공기업의 운영 등 전반의 업무를 관리·감독하도록 포괄적인 권한을 부여한다.
지방공기업법과 부천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의 공기업 설립 관련 조례가 지자체장에게 소속 공기업의 관리 감독의 권한을 준 이유는 공공성에 맞게 운영하기 위해서다. 공기업이 사기업처럼 기업의 이윤에만 골몰하지 말고 설립 취지에 맞게 지역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 운영하도록 관리·감독을 하라는 취지다. 그런데 해당 지자체들은 노조법이 보장하는 자율적 노사활동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근거로 악용하고 있다.
해당 공기업들은 명백하게 독립채산체로서 운영된다. 그러나 임직원의 보수에 해당하는 임금인상을 비롯한 각종 근로조건을 사측과 협의해 단체협약을 맺더라도 지자체장이 승인하지 않으면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지자체는 지방공기업법과 지자체 조례의 관리 감독 권한을 근거로 임직원에 대한 인사나 보수, 그리고 각종 근로조건에 대해 세세하게 통제하고 관리한다. 노조법의 취지를 위반하는 과도한 간섭이다.
부천시 예산법무과의 논리에 근거한다면 소속 공기업의 자율적 노사교섭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해당 노동조합은 입장문을 통해 부천시가 소속 공기업 노사의 교섭 안건조차 사전 승인을 요구한다면 부천시장이 노동조합의 사용자로 교섭 테이블에 직접 나와야 한다는 취지로 부천시를 비판했다.
노사 자율로 합의한 단체협약에 대한 지자체와 정부의 부당한 사전검열 시도는 반노동 정권으로 꼽히는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과 철학적 배경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자율적 노사 합의사항에 예산편성권과 경영권을 침해한다며 각종 단체협약 개정을 몰아붙여 노동조합 활동을 파괴했다. 선거철마다 노동 3권을 폭넓게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기존의 제도에 기대어 노사자치를 훼손하는 지자체는 지금이라도 공기업 노사의 단체교섭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중단하고 노사자치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제도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leeseyha@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