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22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또다시 정당들이 ‘민생법안’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덩달아 운동진영도 법개정 요구들을 또다시 청원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를 보면서, 마치 옛날 영화를 돌려 보는 듯한 기시감과 피로감이 몰려온다.

특수고용, 프리랜서. 뭐라고 부르든 자신이 몸소 일하고 그 대가를 받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요구는 이미 2000년부터 청원됐다. 노무현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대신 단체결성·협의권만 인정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2007년 발의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주당은 특수형태종사자법안을 다시 발의했다가 특수고용대책회의 등 당사자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치자, 2012년에는 민주노총이 청원한 노조법 2조 개정안을 발의해 주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지형이 다시 한 번 뒤집어진다. ‘노동존중’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 3권을 보장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ILO 등의 거듭된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당시 야당이었던 ‘노총 출신’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노무현 정부의 특수형태종사자법안을 표지만 바꿔 제출했다. 또 정권이 바뀌어 야당이 된 민주당은 지난해 노조법상 ‘근로자 정의’를 개정하는 부분은 빠진 ‘노란봉투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렇게 지난 20년간 정당과 국회의원의 이름만 바뀌며 노조법 2조 개정안은 국회를 떠돌다 버려졌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지난 20년간 민주노동당·정의당·민주당·국민의힘 등의 이름표를 붙이고 국회의원이 되신 분들 누구에게서도 노조법 개정에 진심인 모습을 보지 못한 듯하다. 그러면서 외국의 어떤 의원들을 떠올리게 된다.

영국을 대표하는 노동변호사인 존 헨디 경(Lord John Hendy)은 지난 50년 동안 영국과 유럽 노조의 대표적 사건들을 변호해 왔다. 1984~85년 영국 광부노조 파업부터 최근 플랫폼기업인 딜리버루의 배달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투쟁에 이르기까지, 그는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평생 법률가로서 싸워 왔다. 2019년 노동당 소속 상원의원이 된 그는 ‘자신이 몸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 모두에게 노동법을 적용할 수 있는 법안(노동자 지위법)을 발의하고 상원 통과까지 이끌어 냈다. 지난해 그를 만나 법안 통과 가능성을 질문했을 때, 그는 정부의 반대로 의회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지만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영국 법률가 중 최상급인 ‘왕립법률가’(King’s Counsel)이기도 한 76세의 헨디 변호사는 오늘도 영국 전역의 노동조합 모임을 다니며 보수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조법 개악을 비판하며 투쟁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 노조운동의 중심으로 떠오른 캘리포니아에는 로레나 곤잘레스(Lorena Gonzales)가 있다. 그녀는 미국노총의 캘리포니아 지역본부에서 활동하다가 2013년 민주당 소속 캘리포니아 주의원이 됐다. 그녀는 주의원으로서 최저임금 인상, 임금체불 방지, 유급병가 등 많은 노동자보호 입법에 앞장섰다. 가장 유명한 법이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노동자오분류 방지법(일명 ‘AB5’)이다. 모든 노동자를 ‘근로자’로 추정하며 이를 반증할 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법안은, 플랫폼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끈질긴 투쟁과 결합되면서 2019년 입법됐다. 곤잘레스는 2022년 주의원을 사직하고 노조로 돌아와 캘리포니아 지역본부(California Labor Federation)의 수장으로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을 보며 필자가 느낀 감동은 물론 피상적인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국회의원을 마치고 노동자교육에 헌신하는 단병호 위원장 같은 사례도 있다. 그럼에도 ‘노동운동 출신’ ‘시민단체 출신’을 내걸고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진보정치’는 고사하고 개혁입법이라는 의원으로서의 직업활동에도 전념치 않는 ‘운동가 출신’이 더 많이 보인다.

이에 대한 유감을 ‘초심’이라는 관념적 말로 끝맺지는 않겠다. 과거의 인맥·출신에 영합하며 대중조직·운동조직으로서의 긴장감을 놓아 버리는 조직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답게’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되돌아가야 할 노동정치의 출발점이 아닐까.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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