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타워크레인은 그 어떤 장비로 대체할 수 없는 건설현장의 꽃.”

지난해 3월16일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중 일부다.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건설사로부터 받는 월례비를 ‘갈취’라고 규정하며 건설부문 노조를 압박하던 때다. 월례비는 정당한 임금이라는 대법원판결이 나오면서 정부의 공세는 머쓱해졌지만 원 장관이 남긴 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타워크레인 없이는 건설현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타워크레인이 건설현장의 꽃이라면, 크레인을 세우고 조립하는 노동자는 건설현장의 꽃을 키우는 이들이라고 해야 할까. 이들 설치·해체 노동자들이 24일부터 무기한 전면파업에 들어간다.

타워크레인 두 배 늘어날 때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동자는 ‘반 토막’

정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3월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타워크레인은 모두 5천921대(대형 4천189대, 소형 1천732대)다. 조종사 자격증 보유 인원을 보면 대형타워크레인이 1만1천106명, 소형타워크레인이 1만2천523명이다. 타워크레인이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해체를 하는 노동자는 500명가량이다. 미등록자를 포함하면 최대 600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등록 설치해체 업체 125곳에서 일한다.

설치·해체 노동자는 해마다 급감하고 있다. 2009년 당시 타워크레인은 2천958대, 노동자는 1천292명이었다. 15년이 흘러 타워크레인은 6천대에 육박하지만 노동자는 600명대 밑으로 쪼그라들었다.

높은 노동강도, 불안한 일자리, 높은 산재 위험, 이런 노동조건을 보상해 주지 못하는 임금체계가 노동자 축소의 배경이다. 설치·해체는 팀 단위로 움직인다. 보통 팀장 1명과 팀원 4명이 한 조를 이룬다. 여기서 팀장은 같이 일하는 동료이자 설치·해체업을 등록한 사업주이기도 하다. 팀장이 타워크레인 임대사업자로부터 일감을 따와서 팀원들과 함께 일하는 형식이다. 건설현장 오야지, 조선업 물량팀장과 비슷하다. 팀장과 타워크레인 임대사업자 간에는 계약의 형식이 없다. 오희택 타워크레인모꼬지협동조합 이사장은 “설치·해체업 면허가 없는 타워크레인 임대사가 팀장에게 업무를 맡기는 형식이지만 그 과정에 도급계약서는 물론 아무런 문서조차 남기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불법하도급이 너무나 명백하니 문서를 남기지 않고 구두 약속으로 업무가 이뤄지고, 임금수준도 들쑥날쑥하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선 4~8일 걸리는 작업
한국에선 하루 만에, 산재사고 원인

500~600명밖에 되지 않는 설치·해체 노동자들은 전국의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일한다. 일감이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타워크레인 설치·해체를 하루 만에 끝내는 관행 때문에 하루살이 인생이다. 빠른 시간 안에 일을 끝내고 다른 현장을 찾아 떠돈다. 일거리를 못 찾으면 쉬어야 하고, 일거리를 연속으로 잡으면 고강도 노동이 기다린다. 타워크레인 임대사들이 인건비를 적게 책정하면서 임금도 낮아지고 있다. 반면 산재 위험은 매우 높다. 2013년부터 최근까지 대형타워크레인에서만 41명이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중상자는 73명이다. 대형타워크레인 설치·해체 노동자가 350명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자 8.6명당 1명꼴로 산재로 숨지고, 3.2명당 1명꼴로 죽거나 중상을 입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설치·해체가 단 하루 만에 이뤄지는 무리한 작업이 원인이다.

전국타워크레인설·해체노조(위원장 정회운)는 팀장들이 모인 타워크레인 설·해체 팀장협회와 단체교섭을 하고 있다. 노조는 임금인상, 현재 하루인 작업일수 이틀로 연장, 크레인 상승 연결작업과 벽 고정 작업 분리, 해체시 벽 고정 작업 기간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팀장들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정회운 위원장은 “유럽은 8인 1조, 설치·해체 작업일 4~8일로 우리가 비교조차 못 할 정도로 작업자 안전에 신경을 쏟고 있다”며 “정당한 임금을 받고 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건설사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는 설·해체 업체-타워크레인 임대사업자 간 계약이 아니라 설·해체 업체-건설업체 간 직접계약으로 임금 중간착취를 예방하고,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의무화돼 있지만 작동하지 않고 있는 특별안전교육 2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설현장별로 작업환경과 공정 등이 다르기 때문에 특별안전교육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설치·해체 속도전을 지양하면 일감과 임금 수준도 보다 안정화할 수 있다.

“임대사 실사용자 아냐” 조종사 불법파견 논란

타워크레인 조종사와 설치·해체 노동자가 연대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다. 조종사들은 타워크레인 임대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일하다가 해당 건설현장 작업이 종료하면 다시 백수가 되는 형태로 일한다. 이전에는 종합건설사가 타워크레인을 직접 소유하고, 노동자도 직접고용했다. 외환위기 이후 차츰 외주화하면서 지금은 임대업자가 타워크레인을 보유하고 노동자와 단기 계약을 맺는 형태가 자리 잡았다. 건설사와 타워크레인 임대사 간의 도급계약 내용에 따라 조종사 임금이 정해진다. 보통 11개월 일하고 6개월 쉰다. 조종사들은 타워크레인 임대사가 아니라 건설사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다. 건설사가 추가업무·연장업무 등을 요구하면서 조종사에 건네는 것이 월례비다. 건설공사 현장에서 이뤄지는 업무에 대해 근로자 파견사업을 불허하고 있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일 개연성도 있다.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위원장 유상덕)는 올해 타워크레인 임대사 모임인 타워크레인협동조합과 임금교섭을 하고 있다. 기존 임금협약으로 규정한 수준보다 최근 임금이 하락한 점이 쟁점이 되고 있다. 타워크레인임대사에 속해 일하는 다단계 불법하도급 고용구조가 저임금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고 건설사 직접고용을 주장하고 있다. 타워크레인 임대계약시 장비사용료와 조종사 임금을 분리계약하는 방식으로 임대사의 중간착취를 막아 적정임금을 보장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유상덕 위원장은 “원청이 직접 작업지시를 내리고 고용을 책임지면 불법파견 논란도, 월례비 문제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며 “그 전에 장비 임대료와 조종사 임금에 대한 계약을 분리해 적정 임대료와 노동자 임금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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