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원외정당이 되고부터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 나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이 정의당을 비롯한 범좌파정당들이 민주당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했으며, 그 원인은 역사관을 주조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역사관은 노무현과 김대중의 10년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는 것 외에 민주당의 역사관과 딱히 구별되는 내용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많다. 한국정치학회와 한국정당학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21대 국회의원 선거 유권자 정치의식 조사’를 보면 정의당과 민주당의 정책적 지향성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성향에도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 민주당은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이 저명한 마르크시스트 경제학자 강남훈의 기본소득론을 채택하기에 이르렀지 않은가?
김준우 전 정의당대표의 총선분석에서도 뒷받침된다. 과거 비례대표는 정의당에 던졌던 호남 유권자들이 대거 조국혁신당으로 이동하면서 비례대표조차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그의 분석은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 친민주당 성향의 유권자들,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과거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을 찍던 호남의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함으로써 정의당은 몰락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정의당에 주어진 대안은 민주당과 적극 연대하며 “더 급진적인 민주당”이 되든지, 아니면 민주당과 분리해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든지 외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당 몰락은 이 두 가지의 갈림길에서 제대로 된 방향성을 정립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다. 후자를 지향하면서도 전자에 가까운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정의당은 한편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는 비판을,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당 2중대’라는 비난을 받았다. 조국혁신당이 등장한 상황에서 ‘더 급진적인 민주당’의 자리를 진보정당들이 차지하기도 쉽지 않아진 게 현실이다.
문제는 기존의 정의당은 어째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는가다. 내부의 계파 등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정의당이 생각하는 대안적 자본주의의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정의당이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의 부재를 의미한다.
201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범진보진영의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진단은 비교적 명료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모순의 해소를 위한 북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의 건설’이라는 서사는 누가 봐도 명료했고 논리적으로도 탄탄했다. 실제 그러한 구상을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을 규정하고 그로부터 실질적인 대안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은 진보세력의 영향력을 온존하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좌파 정당에는 그러한 자본주의의 성격에 대한 진단과 대안 도출의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후위기, 불평등 등 여러 개념어들이 난무하지만 그것들이 한국인의 생활세계로까지 내려오지를 못하고 있다. 좌파의 본래 과제는 사회적 관계의 개조다. 그러한 개조는 인민의 생활양식을 변혁함으로써만 달성된다. 복지국가론이 파급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생활세계의 직접적인 변혁을 의도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오늘날 좌파들이 바꿔야 할 한국인 생활양식은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우선이다.
지금 좌파가 바꿔야 할 한국인의 생활양식은 ‘소유자적 개인주의’다. 한국의 모든 제도들은 개인을 중산층 형식의 ‘소(小)소유자’로 만드는 방향으로 조직돼 있다. 모든 개인을 사회적 연결망으로부터 분리시켜 외따로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의 국가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가가 제공한 경로로부터 이탈한 이들에 대한 가혹한 처우를 개선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개인을 소유자적 주체로 만드는 그 기제 자체를 타격해야 한다. 문제는 다시, 자본주의다.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fpdlakstp@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