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국 경기도 노동정책전문관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어젠다는 바로 양극화와 저출생 위기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역대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15년 동안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무려 380조2천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 발에 오줌누기식 땜질처방으로 이제는 급격한 고령화와 출생률 저하로 ‘국가소멸’ 위기까지 걱정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필자는 이러한 국가 위기 원흉을 노동시장의 ‘고용불안’ 문제라고 지적하고 싶다. 경제성장을 이유로 역대 정부들은 파견·도급·특수고용·플랫폼노동 및 비정규직 남용 문제들을 그냥 방치하고 오로지 국가 재원의 사회복지 문제로 출생률을 높이고자 했다. 심지어 외주화(아웃소싱)가 마치 시대 흐름인 것처럼 아무런 제재도 없이 너무 광범위하게 진행돼 수많은 비정규직 간접고용을 늘리고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904만명이다. 그리고 건설기계 및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고용직은 165만명, 플랫폼 노동자 292만명 등 비임금노동자는 785만명이다. 우라나라 노동시장에서 1천700만명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취약 노동자거나 ‘제도권 밖’ 노동자다. 즉, 노동자 절반이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악성체불·최저임금·노동시간·휴게시간·유급휴가·산재예방·사회보험 등과 같은 아주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에서도 배제돼 있다. 또 파견 같은 간접고용도 계속 늘고 있다.

조류나 동물도 먹을 것이 없으면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하물며 사람은 어떤가. 당장 1~2년 앞 생계를 장담할 수 없는 청년들에게 결혼해서 아이들을 더 많이 낳으라고 하면 이게 정상적인 정부인지 묻고 싶다. 심지어 3D[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업종은 내국인 기피 업종으로 매도한 채 그 자리에 외국인력을 대거 투입하는 등 땜질식 정책으로 점점 내국인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산업화 초기 100년 전에는 이러한 특수고용직·플랫폼노동·파견 문제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지금, 우리나라는 여전히 산업화 초기 만들어진 노동법과 고용관계를 협소하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새로운 고용형태에서 체불 문제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같은 여러 정부 부처들이 서로 핑퐁게임을 하면서 관리감독 책임을 미룬다. 그 사이 체불노동자의 가정은 파탄나기도 한다. 심지어 변호사를 고용해 지리한 소송을 벌이다 끝이 안 보이는 법정공방에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기기도 한다.

산업현장에서 노동 3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사업장일수록 노동환경이 더 나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고용형태 다변화 추세에 따라 모든 취업자의 보편적 노동권과 사회보장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금과 같은 ‘근로자’ 지위가 아닌 ‘모든 취업자’에게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사장님 공화국’으로 만들 순 없지 않겠는가?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모든 일하는 사람의 노동환경, 노동조건, 단결권, 사회보장 등 촘촘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업장의 노사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국가소멸을 걱정하는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것이 정부의 책무이다. 만약 이러한 비표준적인 계약 방식의 왜곡된 노동시장을 지금처럼 그냥 내버려 둔다면 플랫폼과 인공지능(AI) 기술 발달로 사업주들은 계속 법망을 피하면서 이윤만 취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종국에는 이러한 불안정 노동은 큰 사회적 비용을 유발, 국민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경기도는 일하는 모든 사람 권리보장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이다. 특수고용직 플랫폼노동을 포함한 5명 미만 사업장, 65세 이상 고령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해 경기도민이라면 고용상의 지위나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 없이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사람들을 폭넓게 보호하는 게 목적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여러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발의했지만 계류된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법률’안들이 하루속히 다시 여야 합의를 통해 제정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법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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