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스타우트가 쓴 책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원제: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는 전체 인구의 4%를 차지하고 있다는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한 유형)가 어떤 인간인지, 이들이 왜 위험한지를 설명·경고하는 대중서다.
소시오패스는 흔히 생각하는 잔혹한 범죄자가 아니며, 결론적으로 양심이 없는 인간이다. 이들에게 삶은 대개 무료하다. 그래서 자신이 쾌감을 느끼는 자극과 게임에 열중한다. 이들은 온갖 거짓말로 자신이 가진 매력을 과장하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고 한다.
저자는 단지 소시오패스 개인의 해악을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경쟁과 승리를 부추기는 현대 사회가 소시오패스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얼마 전 대통령은 총선 참패 후 첫 ‘민생토론회’를 열었는데, 필자는 ‘노동약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대통령의 발표를 들으면서 현대 사회가 소시오패스를 부추긴다는 마사 스타우트의 통찰을 떠올렸다.
이날 대통령은 ‘노동약자 지원법’ 등 ‘보호’ 조치를 말했지만, 정작 “노동개혁은 가장 중요한 것이 노사법치”이고 “불법이 관행화된 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관심사는 건설노조 탄압, 노동조합 회계공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규제, 단체협약 시정명령 등 그간 정권이 골몰해 온 ‘노조 때리기’에 있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은 것이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5명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적용하는 것이야말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점을 이미 분명히 한 바 있다.
민생토론회에서도 대통령은 “특정 사업주를 전제로 하지 않는 노동 보호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은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핵심이 빠져 있다 보니 대통령이 말한 ‘노동약자 지원법’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한 공제회 설치, 재정지원 사업의 법적 근거 마련 등 진부한 재정지원책에 불과하다.
심지어 대통령은 지원법을 만들겠다는 마당에 그 수혜자인 ‘노동약자’가 누구인지도 깊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후속 브리핑에서 ‘노동약자’가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용노동부 장관은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라고 무조건 약자에 들어간다는 것은 아니”라면서 이후에 사회적 논의를 거쳐 확정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날 대통령은 노동법원 설치도 언급했는데, 단지 임금체불에 관한 신속한 권리구제 방편으로서 지극히 협소하게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진정성’은 차치하고 같은 제도에 관한 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정부는 노동시장 약자를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했다가 조직 및 미조직 노동자들을 가지리 않고 광범한 사회적 반발에 부딪혀 후퇴한 바 있다. 임금체불과 포괄임금제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말이 무색하게 체불임금액은 지난해에 사상 최대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 1분기도 급증했고, 포괄임금제도 여전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도 조선업 등에서 원하청 상생협약 체결 등을 지원한 것 말고는 정부가 별달리 한 것도 없고 성과로서 내세울 것은 더더욱 없는 듯하다. 오히려 근로시간 유연화, 파견업종 확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약화 등 정부가 추진하려는 ‘노동개혁’은 모두 본질상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민생토론회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을 두고 ‘후안무치’ ‘양두구육’ 등의 평가가 나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소시오패스라고 콕 짚어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권력자들이 대중에게 빤한 거짓말을 태연히 늘어놓는 상황을 너무 오래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