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민석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네이버 라인 사태가 이제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화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의 야권이 문제제기를 시작한 이상 정부도 가만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사태의 본질은 일본 정부가 외국계 기업이 자국의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에게 자본 관계를 바꾸라고 요구한 것이다. 한마디로 외국계 기업의 영향력을 차단하려 시도했다는 게 핵심이다.

일본 정부는 과거 올림푸스 분식회계 사건이나 르노-닛산 사태 때도 비슷한 패턴을 보여줬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일본의 기업지배구조는 많은 개선에도 여전히 외국인과 여성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구조 속에서 외국계 기업 혹은 외국 정부가 일본 내부의 인프라나 주요 기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면 외국인 경영자 혹은 외국계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본 관계를 자국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 노력하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한국계 대기업이었을 뿐이다. AI 출현 등 산업구조의 변화로 개인정보의 중요성이 강조됐다는 배경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가 위안부·징용공을 이유로 한국 내 일본기업의 자산을 처분하려 했을 때 일본이 보여줬던 반응을 고려한다면, 일본 내 한국 기업의 지분을 이렇게나 함부로 변경하려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은 어떠한 행위를 해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이지만, 한국은 심지어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개입하는 게 아니라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 ‘삼권분립’에 기초해 행동해도 비난을 받아야만 하는가. 일본 내셔널리즘의 근간에 있는, 자신들은 ‘야만적인 아시아’와는 다르다는 관념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일부 한국인들이 그러한 관념에 직·간접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지분 매각을 고려할 만하다”는 일견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입장부터, “총선 결과를 보고 일본이 ‘좌경화’된 한국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게 왜 이상하냐”는 주장까지 가지각색의 논리로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일부 좌파도 “고작 기업의 소유권 문제를 갖고 웬 호들갑인가”라는 식의 방관적 태도를 보여주거나 한일 양국의 내셔널리즘에 왜 동조해야 하냐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좌파는 민족문제를 도외시 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당장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이라는 문헌을 읽어 보라. 4개로 나눠 파악할 수 있는 이 저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내용은 프랑스의 지배계층인 부르주아지와 지주계급이 더 이상 민족공동체를 대표할 수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지배계층이 민족공동체를 이끌어갈 도덕성도, 능력도, 민족사적 정통성도 없다는 점을 증명한 다음에 비로소 마르크스는 그와 대비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능력을 상찬한다.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위기에 빠진 프랑스 민족을 구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사적 정통성을 쟁취하며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보편계급”으로의 상승운동이 여기서 일어난다.

즉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동시적 해소야말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강조해 마지않는 과제다. 이 두 사상가가 아일랜드에서 폴란드까지, 모로코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제3세계 민족들의 독립에 관심을 보이며 이론적 개입을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폴란드인은 민족주의에 충실할 때 비로소 국제주의적일 수 있다는 엥겔스의 주장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좌파는 부르주아지들이 세계사뿐만 아니라 개별 민족사에서조차도 더 이상 대표성을 지닐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이 과연 이 민족공동체를 이끌어 갈 능력이 있는지, 그 대안이 무엇인지 등을 끊임없이 반추하며 구체적인 미래상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진행되는 산업 재편 과정에서 나타난 한일 간의 내셔널리즘적 충돌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계급혁명과 민족혁명의 교차 가능성이 생겨날 것이다. 좌파들이 이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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