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육아휴직 중이었던 KB국민은행 콜센터 상담원 김미영(가명)씨는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이야길 들었다. 육아휴직을 중단하고 직장에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통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해 보니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육아휴직 신청 당시 김미영씨는 용역업체 A회사 소속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 콜센터 운영 주체가 B회사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콜센터 상담사들의 고용을 어떻게 할지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B회사가 콜센터 상담사 전원을 고용하기로 하면서 문제는 해결된 듯했다.
하지만 김미영씨의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B회사는 콜센터 상담사들을 고용승계한 것이 아니라 올해 1월1일부로 신규 채용한 것이고, 따라서 이들의 근속기간은 6개월 미만이라 봤다. 그리고 남녀고용평등 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19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해당 사업에서 계속 근무한 기간이 6개월 미만인 노동자의 육아휴직 신청을 거부할 수 있으니, 자신은 신규 채용된 콜센터 상담사들의 육아휴직 신청을 반려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회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복귀하지 않는 사람은 고용하지 않겠다는 으름장도 덧붙였다.
이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닐 가능성이 높다. B회사가 콜센터 관련 인적·물적 조직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이전했다면 이는 영업양도에 해당하는데, 영업양도는 근로관계 승계를 동반한다. 그래서 고용노동부는 기업의 양도·양수 등으로 고용이 승계된 경우 등은 해당 사업에 계속 근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여원 68430-79, 회시일자 2002. 2. 18.).
그 외에도 노동부는 자회사에 신규 채용됐지만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등이라면 해당 사업에서 계속 근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거나(여성고용정책과-755, 회시일자 2015. 3. 24.), 도급업체 변경 과정에서 노동자의 소속 사업장이 바뀌더라도 변경 전·후 사업장이 서로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면 해당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하는 등(여성고용정책과-3011, 회시일자 2016. 8. 26.), 계속 근로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범위를 넓게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비춰 볼 때 B회사의 주장은 법을 자의적으로 협소하게 해석한 것으로 부당하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부 질의회시만 보더라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이런 사항을, B회사는 왜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걸까. 간단하다. 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흔한 것이 간접고용이다. 심지어 콜센터 노동은 70% 이상이 간접고용이다. 그런데도 간접고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용승계 또는 단체협약 승계 등의 문제를 규율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의 노동법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에 우리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법 없이 각종 법리(영업양도, 고용승계 기대권,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 실질적 지배력설 등)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문제는 이렇게 법원이 법리를 만들어 내더라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를 정확히 알고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 김미영씨와 같은 사례가 더는 발생하지 않으리라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나마 김미영씨는 노조 덕에 해고를 면할 수 있었다. 노조의 강력한 항의로 육아휴직자 해고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B회사가 태도를 바꾼 것이다. 노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혼자 사용자의 엄포를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믿을 만한 전문가나 노조가 없다면 간접고용 노동자가 육아휴직도 맘 편히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저출산 문제를 이야기할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해법이 육아휴직 제도 개선이다. 물론 필요한 조치다. 다만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고용 구조에 따라 육아휴직의 사용 양태나 육아휴직 사용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가 다르다는 점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늦지 않게 제도가 개선돼 직접고용·무기계약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간접고용·기간제 노동자도 마음 편히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해 본다.

